◎중간중간 깜짝쇼 “탄성의 4시간”/8만5천관중 파도타기·손전등 켜기 장관/한국 입장장면 방영 코카콜라광고로 잘려○…애틀랜타 올림픽 주경기장은 개막식 시작 3시간30분전인 19일 하오 5시(현지 시간)부터 관람객들에게 문을 개방.
당초 대회조직위윈회(ACOG)는 7시30분까지 모든 입장객들이 좌석에 앉아 줄 것을 요구했으나 때마침 개막 선언을 위해 이곳을 찾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경호문제로 주경기장 인근 교통이 통제되는 바람에 많은 관람객들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개막식 1시간전까지도 8만3천1백명을 수용하는 주경기장은 좌석의 3분의 2정도밖에 채우지 못하다가 식전공개행사가 시작되기 30분전쯤에야 만원을 이뤘다.
○…개막행사에서는 중간중간 깜짝쇼가 곁들여졌는데. 미 공군 전투사령부 소속 비행사들이 F16C 팔콘전투기 6대로 클린턴 대통령과 사마란치 위원장, 빌리 페인 위원장이 나란히 선 그라운드 위를 날아가는 고공쇼를 연출했다.
○…식전행사의 하이라이트는 8만5천여 관중이 하나가 된 파도타기와 손전등켜기. 주최측은 미리 관중석에 형형색색의 스카프와 손전등을 제공, 행사 중간에 파도타기를 유도하면서 스카프를 흔들게 했다. 또한 조명을 끄고 모든 사람이 손전등을 켜 흔들도록 해 장관을 연출.
○…한국선수단은 알파벳 순에 따라 케냐에 이어 96번째로 관중들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
남자배구 최천식(대한항공)을 기수로 한 선수단 약 2백명은 남자는 베이지색 정장을, 여자는 같은 색 스커트에 하늘색 상의를 입었다. 이들은 남녀 모두 하늘색 띠를 두른 모자를 착용하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운동장을 행진. 선수단은 음악을 맡은 애틀랜타 심포니오케스트라 앞을 지나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태극부채를 선물하기도.
한편 1백39번째로 입장한 북한선수단 29명은 아이보리색 바지와 모자에, 감청색 상의를 입고 자연스럽게 손을 흔들며 행진.
○…한국선수단의 입장장면이 이번에도 제대로 방영되지 않았다.
84년 LA올림픽 당시 한국선수단의 입장 장면이 광고 때문에 끊겨 항의소동이 벌어졌는데 이번에도 선두부분만 10여초 화면에 보였을 뿐 코카콜라 광고로 중간 이후는 사라졌다.
이를 본 한 교포는 『미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숫자의 방송중계팀을 파견한 한국선수단의 입장 장면이 연달아 잘린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라며 흥분.
○…베일에 가려졌던 최종 성화주자가 마지막 순간에 모습을 드러내 극적인 효과를 더했다.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먼저 성화를 전달받은 사람은 84년 LA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프로복싱 전 헤비급 통합챔피언 에반더 홀리필드. 운동장 한가운데 원형단상에 몸을 드러내 트랙을 4분의 1 바퀴 돈 홀리필드는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1백m허들 금메달리스트인 파라스케비 파툴리두(그리스)와 나란히 성화를 잡고 트랙을 반바퀴 더 달렸다. 이때까지도 근대올림픽 1백주년을 기념해 주최국 미국과 올림픽 발상지 그리스의 대표가 나란히 성화대에 불을 붙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관중들은 예상.
그러나 성화는 다시 미국의 수영스타 재닛 에번스에게 넘겨졌고 에번스는 이를 어둠속에 숨어있던 왕년의 프로복서 무하마드 알리에게 전달한 것이다.<올림픽특별취재단>올림픽특별취재단>
◎최종 점화자는 알리/떨리는 「투병의 손」으로 감동 연출
알리(54)의 등장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알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서이며 가장 유명한 스포츠인이었다. 또한 흑인의 평등권 획득을 위한 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고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남부의 두 아들」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선수시절 무수히 펀치를 맞은 영향으로 파킨슨씨병에 시달리고 있는 그가 성화점화자로 이곳에 서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어둠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영광의 주인공이 알리인 것을 확인한 8만5천관중은 놀라움과 함께 「알리, 알리」를 외치며 열광했다. 그러나 수영스타 재닛 에번스로부터 성화를 넘겨 받은 그는 꼼짝않고 선채 떨리는 두 손을 모아 어렵사리 불을 옮겨 붙였다. 시종 떨리는 손과 육중한 몸을 지탱하기 힘들어 보이는 하체.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아대던」전성기의 위용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감동과 동정심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60년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돌아온 뒤 고향의 백인전용 음식점에서 서비스를 거절당하자 금메달을 오하이오 강에 던져버리고 프로로 전향해 무적철권을 자랑했던 알리.
그는 미국인, 특히 흑인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영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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