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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책임/김병국 고려대 교수·정치학(한국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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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책임/김병국 고려대 교수·정치학(한국 논단)

입력
1996.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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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선택의 시간에 와 있다』신한국당 대표연설의 첫 마디이다. 시작부터 엄숙하다. 다음에 나올 말이 걱정이다. 한 달 가까이나 국회를 파행시킨 정치권에는 관심 밖의 일일지 모르지만 역사 대전환의 「무게」는 국민이 일상적 삶 속에서 체감한지 이미 오래이다. 세계화는 삶의 경쟁을 격화시키고 탈냉전은 북한공산체제의 공중폭발 가능성을 높인다. 그래서 국민은 연설의 첫 마디에 부담스러워 하고 다음에 나올 말에 긴 한숨을 내모는 것이다.

할 일이 산적해 있다. 경쟁력 약화가 문제이고 통일에 따를 재정적 부담이 걱정이다. 연일 터지는 성폭력사건은 인간성마저 상실해가는 한국사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중지를 모아 무언가를 선택하여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화면이 국회 본회의장을 비출 때 연설은 귀에서 멀어져가고 대신 한마디의 독백이 머리 속을 스쳐간다. 『카리스마가 지배하는 정치가 지속되는 한 「쇠귀에 경읽기」야』

한국의 정당은 선택의 책임을 짊어질 줄 모른다. 한약분쟁이 터지고 노사갈등이 일어났을 때 정치인은 낮은 포복자세로 일관하였다. 개혁정치가 한창일 때 국회는 선택의 책임을 정부 각 부처에 떠넘기고 비판에 만족하였다.

정책적 대안을 내놓다가는 이해갈등에 휘말리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추궁받다 선거에서 「표」만 잃고 말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정치본연의 역할

막스 베버의 저서 속에 나오는 정치인과는 먼 존재이다. 베버는 정치인을 대담하고 열정에 찬 자로 파악하였다. 「비판의 수위에 비례하여 지지자가 늘어난다」고 생각하면서 부단히 새로운 쟁점을 개발하고 정책으로 승부를 가리려는 존재로 정형화하였다.

그러한 정치인은 학자의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지구 반대편에는 시대보다 몇 발 먼저 가면서 쟁점개발과 대안제시 및 여론형성이라는 정치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자가 적지 않다. 총선 참패의 위험성에 아랑곳하지 않고 중동평화를 추진한 이스라엘의 라빈과 페레스가 그러하다. 만년야당 정치인의 처지로 추락할 가능성에 개의치 않고 신념을 따라 인종차별의 벽을 철폐한 남아공화국의 데 클레르크 역시 위대한 정치인의 대열에 끼일 것이다.

한국의 정치인은 초라하다. 정책적 문제의식이 없고 비전과 철학이 부재하다. 이처럼 정치인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않을 때 민족의 미래는 아무런 계획성 없이 세계화와 탈냉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에 의해 선택되고 결정되어 버린다. 정치가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할 때 무분별한 임금인상은 계속되고 재벌은 매력적인 투자대상을 찾아 해외로 나간다. 「반공」과 「동포애」라는 명분 사이에서 고민하는 국민을 설득하기가 어려워서 침묵할 때 북한문제는 더욱 더 위험한 사태로 치닫는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선택의 회피는 국민에 대한 책임의 전가로 이어진다. 한국의 정치인은 언제나 지역감정에 젖은 국민이 문제라고 한탄한다. 결과를 원인과 혼동하는 말이다. 정당이 쟁점을 피해갈 때 시민은 지역이라는 「감정」을 기준으로 정당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경제영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원화가 고평가되고 체감물가가 상승하면 소비자가 외제를 선호하기 마련일 터인데 한국정치는 스스로 정책전환을 모색하기보다 오히려 「과소비를 일삼는 국민」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정치영역에서나, 경제영역에서나 문제는 자기가 저질러놓고 사태를 추스를 책임은 국민에 떠넘기려 하는 것이다.

○「약아진」 국민들

국민이 봉인가.

아니다. 사반세기동안 카리스마가 펼치는 권력정치에 이리저리 치이다보니 국민은 「정치유단자」보다 한 수 위의 경지에 올라서서 권력투쟁의 전모를 파악하고 쟁점 피해가기의 진상을 알게 되었다.

아울러 지역감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과소비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문제아로 지목되어 몇 번이나 정치인 대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추궁받다 보니 이제는 지역주의 타파와 과소비 추방 등의 구호에 아예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민은 카리스마의 정치를 비판하고 정책논의에 나서는 「건전한 반란」이 먼저 국회 내에서 일어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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