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소땐 미국내 재산 외에 수출대금까지 묶일판/북 초비상대응속 대미 연락사무소 개설도 주춤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이 해외 채권단으로부터 집단소송을 당해 내우외환의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영국의 ANZ 글린들레이스 은행을 비롯한 서방 17개국 60개 금융기관은 그동안 북한으로부터 받아내지 못한 차관 원금에 이자를 더한 총 13억7,000만달러의 채권확인 및 청구소송을 워싱턴DC 연방지법에 접수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청구액을 항목별로 보면 스위스 프랑화와 독일 마르크화로 계산된 합계 13억7,077만달러의 외채 원금과 이자외에 소송비용 15만6,000달러, 기타 부대비용 8만5,000달러 등이다.
원고측이 소송을 제기한 시기는 95년 3월14일. 미국이 94년 북·미제네바 합의에 따라 1단계 대북 경제제재 완화조치를 취한 지 2달만이었다. 원고측은 이와는 별도로 소송제기 4일전인 지난해 3월10일 북한의 김웅철 「무역은행」대표, 김영남 외교부장, 이성녹 대외경제촉진위원회 부위원장 등 5명의 각료급 인사 앞으로 텔렉스를 보내 외채확인 및 청구소송에 협조를 요청했다.
이번 소송의 법률적 근거는 77년 3월23일 원고측과 북한측이 체결한 차관변제 합의서. 원고측은 북한의 차관알선 창구였던 「무역은행」이 당초의 약속을 어기고 4억8,900만 스위스프랑과 3억2,400만 마르크 상당의 채무를 이행치 않자 차관상환 합의서 제9항에 따라 중재를 신청했고 국제상공위(ICC) 중재재판소는 92년 4월24일 원고측의 승소를 결정했다. 양측 합의서 9항은 채권자와 채무국간의 분규발생시 ICC의 중재를 따르도록 돼 있다.
결국 원고측의 이번 청구는 ICC 중재재판소의 채권변제 명령이 미국에서도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연방법원이 확인해 달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소송은 원고측이 향후 미국내 북한자산에 대한 가압류 조치를 취하기 위한 정지작업인 셈이다.
북한은 77년 3월의 차관변제합의서 외에 80년과 84년 2차례에 걸쳐 채권단과 보충합의서를 체결해 채무액을 확인한 상태이기 때문에 차관 원금의 상환의무에는 이의를 달지 않고 있다. 다만 서방 채권단이 북한을 「파산국」으로 선언한 87년 8월 이후부터 채무를 완전변제하는 시점까지의 원금에 대한 이자를 복리로 계산하려는 데 대해 반발하고 있다. 여기에 ICC의 중재 및 이번 채권확인 소송 등에 따르는 경비도 부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건에 대한 워싱턴 연방지법의 판결은 늦어도 3∼4개월 이내에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데 북한이 소송에서 패하는 경우 원고측은 북·미간 교역으로 발생하는 피고측의 「달러」를 압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확보하게 된다.
이번 소송의 1차적인 판결효력은 아직도 미국내에 묶여있는 800만달러의 북한 자산에 미칠것으로 보인다. 미국내에는 1,400만달러의 북한 자산이 동결돼 있다가 95년 1월의 1차 경제제재 완화조치 이후 600만달러가 해제됐으며 나머지 800만달러는 여전히 동결된 채로 남아있다.
워싱턴의 한 한반도문제전문가는 『북한측은 미국법원에 제기된 채권소송에 엄청난 신경을 쓰고 있다』 면서 『북한측이 연락사무소 개설을 서두르지 않는 이유도 이 소송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가까운 장래에 북한 연락사무소가 워싱턴에 개설되면 북한 외교관들이 해야할 첫번째 일은 미국 법정에 서는 일이 될 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워싱턴=이상석 특파원>워싱턴=이상석>
◎워싱턴의 입장/미 “북 연착륙 차질 우려” 미온적
미 행정부는 북한을 상대로 한 국제금융단의 채권확인소송이 정치·경제 등 모든 측면에서 미국에 이로울게 없다는 입장이다. 미 은행이 관련된 소송도 아닌데다가 북한에 대한 집단 채권소송의 홍수는 평양정권의 「연착륙 유도」라는 전략적 목표달성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법원 관련문서에 따르면 미행정부는 이번 소송이 제기될 때부터 원고측 협조요청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미 국무부는 법원당국이 지난해 4월4일 『비공식 외교경로를 통해 북한 외교부에 소환장과 소송의 개시 등을 알리는 공판기록을 전달해 달라』고 요청한 데 대해 그해 11월16일 이를 정중히 거부했다.
북·미 제네바 핵합의를 가까스로 성사시킨 미 국무부가 자국의 실익이 없는 송사에 끼여들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법원측은 사정이 다르다. 미국은 원고측 금융기관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영국 프랑스와 함께 「해외중재 인정 및 이행에 관한 국제협약」(일명 뉴욕컨벤션)의 조인국이다. 이에따라 법원은 원고측의 채권확보 노력에 협조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결국 원고측이 이번에 승소하는 경우 북한의 국제사회 유도를 위해 고려중인 미국의 대북 무역규제 완화조치의 1차적인 과실은 이들 국제채권단이 독식하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클린턴 행정부는 이번 송사로 인해 북·미 연락사무소 상호개설의 무기지연을 비롯한 정치적 파급효과가 최소화하기를 바라면서 장기적으로는 북한 외채상환 일정의 재조정과정에서 「정직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워싱턴=이상석 특파원>워싱턴=이상석>
◎북한 외채규모/115∼118억불… GNP의 절반 넘어
북한의 총 외채 규모는 115억∼118억달러(이하 95년말 현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같은 액수는 우리의 외채규모인 784억달러에는 못 미치는 것이지만 우리는 외채가 국민총생산(GNP)의 17.4%인데 비해 북한은 GNP의 절반을 넘어서는 52.9%로 심각한 수준이다.
북한은 60년대말까지 공산권내 대북경제지원이 무상 또는 원조형식으로 이뤄져 외채가 전무한 견실한 국가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70년 9월 중국·구소련과 무역적자분을 외채로 산정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70년대초 6개년 경제계획 기간에 연불로 도입한 중화학설비 대금을 계약기간내 지불치 못하며 외채가 누적되기 시작했다. 특히 1·2차 오일쇼크를 거치며 외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하고 경제난이 겹쳐 85년부터는 이자도 지불 못해 87년 8월 서방채권단으로부터 「파산국가」로 규정되기에 이르렀다.
북한이 지고 있는 외채는 대략 4가지 유형이다. 첫째, 북한정부에 대한 외국정부의 채권으로 러시아 중국 스웨덴 핀란드 및 동구권국가들이 대북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이나 채권자가 규모를 공개하지 않아 정확하지는 않지만 러시아가 43억2,000만달러로 가장 많고 중국(21억9,000만달러) 일본(9억1,000만달러) 등의 순으로 알려져 있다.
둘째는 서방채권은행단(컨소시엄) 보유 채권이다. 채권규모는 23억3,000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는 4개 채권단에 104개 은행이 포함돼 있었으나 현재는 111개 은행으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셋째는 스위스와 영국 기업 등이 북한에 공급한 제품 및 설비 대금으로 받은 채권으로 개별기업들이 갖고 있는 채권이다. 마지막은 투자자들이 둘째나 셋째 유형의 채권을 구입해 형성된 것들이다.<윤석민 기자>윤석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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