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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이름없는 피아니스트에게(공연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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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이름없는 피아니스트에게(공연읽기)

입력
1996.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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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연주는 오래간만에 참으로 오래간만에 나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우선 선생이 연주한 연주장 입구에 화환이 하나도 서 있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이 없을 때 섭섭하게 여기는 연주자들이 더러 있는 모양입니다만 나는 눈에 거치는 것 없이 연주장에 들어가 차분하게 선생의 연주를 대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이 알리는 선생의 경력이 의외로 간단해서 선생을 처음 대하는 나는 아쉬움을 느끼긴 했습니다만 결국 연주자의 프로필은 연주로 알려야 한다는 주장을 평소 펴온 나로서는 아쉬움을 순간적으로나마 느꼈다는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연주가 매일 있는 요즘같아서는 그래도 어디선가 연주자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다고 여겨질 때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인가 봅니다. 나 역시 정말 우연히 누가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더라면 선생을 만날 기회를 잃어버렸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선생의 예술적 자존심이 선생의 외모를 숨기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선생의 연주는 모든 면에서 다 뛰어나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면이 다 뛰어나다고 해서 뛰어난 연주가라고 단적으로 말할 수 없겠지요. 모든 면이라는 말 자체도 사실 애매하니까요. 마치 모든 치수가 다 갖추어져 「슈퍼」라는 칭호까지 붙여진 「미인」이 때로는 지극히 권태감을 주기도 하는 것처럼 아름다움이란 또 다른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은 기발한 곡목을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생이 연주한 슈베르트와 슈만을 나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이 땅에서는 처음 듣는 것 같습니다. 선생의 연주는 예술행위의 근본에 고독이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 아니었는지요?

선생의 연주는 작은 연주장에 모인 사람들의 숫자야 어떻든 나 한 사람의 마음 속에 파고드는 것처럼 느끼게 했습니다. 선생은 나에게 슈베르트와 슈만을 소개해 주었고 내가 그들과 만나 잔잔히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말없이 곁에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징글징글한 디지털음향과 사람의 마음을 엉망으로 황폐하게 만드는 선동적 음악이 판치는 속에서 그저 고독할 수 밖에 없는 나는 역시 고독했던 그 음유시인들과 함께 대화하며 전혀 고독하지 않았습니다. 행복감―삶에 힘을 주는 것에 이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선생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조성진 예술의 전당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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