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공해로 신음하는 여천공단 르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공해로 신음하는 여천공단 르포

입력
1996.07.16 00:00
0 0

◎“하늘엔 산성비 땅·바다엔 중금속”/때마침 장맛비 “그나마 숨쉴만”/피부병 걱정 손자들도 안찾아/“이주대책 등 정부서 뒷짐” 주민들 절망감속 비난「하늘에선 산성비가, 땅과 바다엔 온통 중금속인 죽음의 땅」

여천공단과 인접한 중흥동 두암마을 입구에 이 마을 청년회에서 내건 플래카드의 선명한 붉은 글자가 눈을 따갑게했다.

하늘을 뒤덮은 자욱한 스모그, 코 끝을 찌르는 매캐한 가스냄새, 조개와 물고기조차 살 수 없는 공해의 바다. 대를 이어 살아온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현실에 마을 사람들은 절망하고 있었다.

공단에서 발생하는 각종 발암물질로 이곳 주민들의 발암가능성이 전국 평균발암률보다 최고 27%나 높다는 조사결과가 보도(본보 1·5면)된 15일 상오 여천공단에는 주민들의 시름을 달래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장맛비가 주룩거렸다. 주민들은 비라도 와야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던 그간의 사정을 이날따라 새삼스레 떠올리고 있었다. 기업들이 환경오염방지대책을 세웠다고 요란하게 선전했지만 주민들을 숨쉬게 해준 것은 하늘(비)의 은총 뿐이었음을 깨닫고 있는 듯했다.

생활환경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이 사실을 은폐·축소하기에 급급한 정부당국의 처사에 주민들은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며 내쉬는 한숨속에 절망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마을주민 최남식씨(50)는 『정부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세금만 거둬가고 오염피해는 주민들에게 떠맡기고 있다』며 『1조3천억원에 달하는 1년 세금만 투자하면 이주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텐데도 뒷짐만 지고 있다』며 격앙된 목소리였다.

이 마을 회관에서 만난 아주머니들은 『바다와 논밭은 이미 죽음의 터로 바뀐 지가 오래고 고약한 가스냄새때문에 방문을 열지 못하는 하루하루』라고 하소연했다.

공단 주변에서 만난 손순심씨(여·58)는 『3일만 비가 안와도 장독대에 검은 먼지가 한 주먹 쌓이고 텃밭의 채소도 먹지 못할 지경』이라며 『손자들이 10여명이 되지만 할머니집에 와서 피부병 옮을까봐 자주 오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여천공단내 산업도로 횡단터널밑에서 만난 주민 최남식씨(50)는 『하늘에는 수만볼트의 고압선이 쳐있고 산업도로밑은 황산가스등 각종 가스관이 거미줄 처럼 얽혀있으며 바다는 중금속에 오염돼 죽음의 삼각지대에서 살고 있다』며 『사람이 살아야 하니까 우선 이주라도 시켜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두암마을 주민 조점애 할머니(74)는 『바다에 바지라기가 하나도 못 살고 사람도 바다나 논에 가면 피부가 가려워 견딜 수 없는 지경』이라며 『늙은 사람이야 죽으면 그만이지만 앞길이 구만리같은 젊은이와 아이들은 이주시켜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여천공단으로 접어드는 공단육교를 지나 첫번째 마을인 여천시 주삼동 삼동마을 주민 손양래씨(71)는 『공단내 압축탱크가 하나만 터져도 모두 죽는 판에 수만개 탱크를 곁에 두고 사는게 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뭐가 다르겠느냐』고 했다.

평여동 주민 김성춘씨(58)는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젊은 사람들도 재산권 행사 때문에 떠나지는 못했다』며 『오염실태 발표이후 더욱 몸이 나빠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여천공단 오염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이곳 환경단체등 사회단체는 물론 주민들이 대책위를 구성하고 이주촉구대회 등 주민집단행동을 계획하고 있어 물리적 충돌로 인한 공단운영의 차질도 우려된다.

여천환경운동본부등 광양만을 중심으로한 여천시·군, 여수·순천·광양지역 20여개 환경사회단체는 15일 하오 2시 여천환경운동본부 사무실에서 「여천공단 환경문제해결을 위한 광양만시민단체 연합회」결성식을 갖고 여천공단지역의 환경보전 특별대책지역 고시와 이주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 성명에서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음의 공단으로 판명된 여천공단 문제를 더이상 방치하지 말고 국민 생존권 보상차원에서 이주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특별대책지역 고시 ▲중앙정부차원의 대책마련 ▲대통령공약사업인 주민이주대책 마련등을 요구했다.

참석자들은 또 이같은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공해유발업체 가동중지 가처분 신청 ▲관계장관 및 해당업체 대표등의 고발등 법적투쟁과 함께 생존권보장차원에서 공장조업저지등 물리적 투쟁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17일 하오 여천공단과 인접한 여천시 중흥동 삼일중학교앞에서 중흥·상암·두암청년회 등 피해주민들의 주관으로 이주대책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갖고 여천공단입구 석창사거리까지 10㎞구간에서 거리행진을 가질 예정이다.

또 27일 하오 3시 여천시 학동 거북공원에서 사회단체와 시민등이 참여한 「여천공단 환경특별대책지역 지정과 종합이주대책 촉구 10만 서명운동 및 결의대회」를 갖고 서명운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여천환경운동본부 신장호 이사장(45)은 『여천공단 주변이 주거환경에 부적합 지역으로 밝혀진 이상 헌법에 보장된 주민 생존권을 위해서라도 정부차원에서 이주대책을 마련해줘야 한다』며 『광양만권 주민들의 힘을 한데모아 공단주변 주민이주 및 환경보전대책 마련에 법적·물리적투쟁등 모든 방안을 강구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여천=김종구 기자>

◎전남도의회,특별재해지역 건의

【광주=김종구 기자】 전남도의회는 15일 여천공단 주변 마을을 특별재해지역으로 지정하고 신설될 해양부를 해양수산부로 개칭해 줄 것을 내용으로 하는 「여천공단 주변마을 환경오염에 따른 대정부 건의안」을 청와대·관련부처 등에 제출했다.

도의회는 건의문에서 『여천지역 주민들을 「죽음의 땅」으로 변해 버린 곳에서 계속 살도록 방치한 1차적 책임이 중앙정부에 있다』며 『이들이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 속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대책을 조속히 수립해 달라』고 요구했다.

의회는 이를 위해 ▲여천공단 주변마을을 포함한 광양만권의 특별재해지역 선포 주민 위주의 피해보상 및 이주대책 수립 ▲이주 전까지 공장가동 중단이나 조업단축 ▲공단의 환경지도 및 감독업무 지방자치단체에 이양 ▲공해 환자에 대한 보상 및 치료비의 국가 부담 등을 촉구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