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가 장밋빛으로 동터오고 있다. 새로운 세기의 새로운 태양은 우리 땅에만 뜨기라도 할듯이 부푼 가슴이다. 한국은 세계 부강국의 대열에 오르고 세계 중심국가가 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하고 나면 이제 G7도 넘볼 수 있다.19세기 말 우리나라는 세계 열강이 문을 시끄럽게 두들기는 소리에 부스스 잠을 깼고 문을 살며시 열고 바깥을 조심스레 살피고 있었다. 그 은둔의 나라가 1세기만에 세계 대국의 반열을 꿈꾸게 되었으니 우리의 20세기는 가상하다.
그러나 큰 나라가 되자면 큰 국민이 되어야 한다. 1등 국가는 1등 국민의 것이다. 우리 국민정신은 1세기 전에 비해 얼마나 진화했는가. 키만 커지고 정신은 지진인 기형이 우리의 비극이다. 이 괴리를 메우지 않으면 일류국가가 될 수 없다. 그 고비가 21세기의 문턱이다.
21세기의 새로운 국민상의 정립은 20세기의 국민상을 반성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의 20세기는 눈물과 한숨, 그리고 피와 땀의 역사다. 전반은 나라를 잃은 역사고 후반은 되찾은 나라가 두동강이 난채 일어선 역사다. 그중 우선 망국과 분단은 원인이 어디 있는가.
1922년에 쓴 춘원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은 나라가 망한 까닭을 타락한 민족성 때문이라고 단정했다. 우리 민족은 거짓말 잘 하고 신용이 없고 이기심이 강하고 비겁하고 단결력이 없고 사회성이 모자란다. 조선왕조를 보더라도 서로 속이고 의심하고 시기하고 모함한 당쟁의 역사다. 나라의 명운을 개선하려면 민족성의 개조밖에 길이 없고 민족개조는 도덕적·정신적 개조가 근본이라고 그는 외쳤다.
춘원의 민족개조론은 당시 일제의 침략을 합리화하는 것이라 하여 매도당했다. 그때 춘원을 비웃는 자를 비웃었어야 옳았다. 당장 민족개조운동을 시작했어야 했다. 그러지 못한 결과 지금도 춘원의 주장은 한 줄도 고칠 것이 없다. 민족성은 여전히 그대로다.
피히테는 나폴레옹군의 점령하에서 행한 「독일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유명한 강연에서 독일 패망의 근본 원인으로 국민의 이기심을 들고 모든 부패의 원인인 이 이기심을 새로운 인간형성의 교육에 의해 타파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적과 맞서 싸우는 것 보다 스스로를 개조하는 데서 승리의 길을 찾았다.
독일 민족은 피히테에게 숙연히 귀를 기울였고 우리 민족은 춘원을 야유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민족성의 약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침략한 일제만 규탄했지 침략당한 자신을 자책한 적이 없다.
남북 분단만 해도 그렇다. 38선을 그은 것은 외세였다 하더라도 휴전선을 그은 것은 우리 민족 자신이다. 동족상잔의 결과다. 북한의 우상숭배와 호전성과 폐쇄성을 한탄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은 영락없는 우리 민족의 자화상이다. 지금 통일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은 외세가 아니다. 북의 탓으로 돌리지만 개방되지 않은 북에 우리 민족성의 원형같은 것이 있다. 남북 분단만도 서러운데 남에서는 한사코 또 동서로 나뉘고 싶어하는 분열증후군이 이를 증명한다.
그래도 경제부흥을 일구어낸 국민이 아니냐고 할 것이다.
중국의 고전인 산해경에는 고대 한민족의 근본 성격을 호양부쟁이라 했다. 양보 잘하고 다툴 줄을 모른다니, 우리 민족이 그런 때가 있었던가. 외국어처럼 생소하게 들린다. 양보하기만 하고 싸우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시대가 있었다. 특히 6·25 이후의 우리 사회가 그랬다. 오늘의 우리 국부는 불양호쟁의 노획물이라 할 수 있다. 경제개발의 룰은 우리 민족성의 악습을 또 하나 굳혀놓았다.
민족성은 풍토나 종족에서 나오기 보다는 역사의 각고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민족의 운명이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역사의 주름살이 민족성을 구겨지게 했다면 이제부터는 거꾸로 민족성을 잘 다듬이질하여 역사가 주름잡히지 않게 해나가야 한다.
서경에는 「작신민」이란 말이 나온다. 새로운 국민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21세기의 대응전략이다. 20세기의 역사를 만들어온 민족성의 폐습들은 21세기를 맞으면서 이제 민족박물관에 들어갈 때다. 빈국시대의 악덕이 부국의 미덕으로 개조되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로 선진화할 수 없다.<본사 논설고문>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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