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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뉴스가치 더이상 독자에 호소못해(언론학자가 본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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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뉴스가치 더이상 독자에 호소못해(언론학자가 본 한국일보)

입력
1996.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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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생활밀착·비정치분야 확대 보도를우리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할 때 그 이야깃거리의 대부분을 언론매체에서 얻고 있다.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언론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중에서 의미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골라 우리에게 기사의 형식을 빌려 전해주고 있다. 우리가 특정한 사건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것은 바로 언론이 그 사건에 중요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를 언론학에서는 의제설정 기능이라 부른다.

신문에 있어서는 매체 고유의 계도성 때문에 이러한 의제설정 기능이 다른 매체, 특히 방송에 비해 더욱 뚜렷이 부각된다. 언론매체가 특정 사건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방식은 두가지이다. 그 하나는 많은 사건중에서 특정 사건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렇게 선택된 뉴스거리들이 편집이라는 작업을 거쳐 각각 어느 정도의 중요성을 갖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독자는 언론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뉴스를 중요하고 의미있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나아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소재로 삼게 된다.

그렇다면 많은 뉴스중에서 독자들은 어떤 뉴스를 중요하거나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로 삼게 되는가. 이는 과거 「기사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전략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이행하고 있는 현재 우리 신문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다. 변화하는 신문의 패러다임 하에서는 뉴스 또는 뉴스가치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요구된다. 기존의 뉴스가치에 입각한 뉴스는 더이상 독자에게 다가갈 수 없다.

첫째, 발생뉴스보다는 상대적으로 기획뉴스의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신문의 의제설정 기능은 기획뉴스에서 발휘된다. 이미 사건이 발생하여 기자에게 「다가오는」 뉴스보다는 숨어있지만 의미있는 대상에 「다가가는」 뉴스가 독자들에게 더 신선하게 느껴진다. 이런 점에서 뉴스는 말 그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특히 출입처별로 기자단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소속이 다른 기자들간에 수집하는 정보가 크게 다르지 않은 현 상황에서 다가오는 뉴스만을 처리해서는 신문의 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없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텔레비전 뉴스의 경우 이미 기획뉴스에 대한 인식은 확고하다. 지난 수요일부터 시작된 한국일보의 「세상이 변한다 사회가 변한다」시리즈는 기획력이 돋보인다.

둘째, 정보중심의 뉴스보다는 생활중심의 뉴스가 확대되고 있다. 이것은 좁은 의미에서의 생활 내지 가정 관련 기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상품판매자, 이벤트운영자, 정보공급자의 입장이 아닌 소비자, 이벤트참여자, 정보수용자의 입장에서 정보가 가공돼야 한다.

이런류의 기사를 생활밀착성 기사라고 할 수 있는데 동일한 고발성 기사라도 일반 독자들의 이해와 밀접한 관련이 없는 것이라면 독자의 눈에 띌 수 없다.

문화예술기사의 경우 거의 지면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정보나열식의 공연, 전람회 등의 추상적인 단신정보보다는 일상생활과 관련되는 문화예술정보를 제공하거나 쇼핑과 연계되는 관람코스 등을 제시하는 것이 유력하다.

셋째, 정치영역 중심의 뉴스보다는 비정치영역 중심의 뉴스가 확대되고 있다. 더이상 정치뉴스가 신문간의 차별성을 보여주는 시대는 지나갔다. 독자들의 성향은 상당히 탈정치화하고 있다. 과학 건강 환경 등과 같은 부문이 새로운 관심영역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센세이셔널리즘이라 할 수 있는 비사보도도 이미 몇 년 전 월간지를 통해 독자의 눈을 거쳐갔다. 거의 매일 1면 톱을 장식하는 정치기사의 경우 기존의 뉴스가치로 볼 때에는 중요할 지 모르지만 정치적 무관심층에는 항상 그렇고 그런 기사일 뿐 사회면의 배꼽박스만큼도 주의를 끌지 못한다.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는 현 시점에서 전통적인 뉴스가치는 유효하지 않다. 기존의 기사 가운데 1면톱으로 가능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재고해야 한다. 새로운 뉴스거리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체 지면의 기사를 대상으로 일정기간에 걸쳐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기사열독률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이를 통해 단신정도의 주목밖에 받지 못할 뉴스가 1면톱으로 처리되고 있는지 검증해 보아야 한다. 기존의 구태의연한 편집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뉴스거리를 개발하고 신선한 뉴스를 주요기사로 부각시키지 못하는 한 신문의 계도적 기능은 다시 살아날 수 없다. 뉴스가치는 고정돼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임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이재현 충남대 교수·서울대 신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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