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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이저 헤드」(영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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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이저 헤드」(영화평)

입력
1996.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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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영상에 새긴 절망과 공포 “관객 매료”「이레이저 헤드」는 「광란의 사랑」 「블루 벨벳」 등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78년에 흑백으로 만든 그의 데뷔작이다. 린치 감독의 영화는 우아함과 아름다움 속에서 어두운 내면을 드러내고 반대로 추악함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이런 독특한 시선은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미지만으로 상상할 수 있는 그의 능력과 개성에 기인한다.

그는 저예산으로 흥행의 부담을 덜고 자유롭게 감독의 세계를 추구하겠다는 독립영화작가 정신을 지니고 있다. 단돈 2만달러(한화 약1,600만원)로 5년간에 걸쳐 완성한 「이레이저 헤드」는 단순한 B급영화를 뛰어넘어 감독의 세계관과 스타일을 뚜렷이 보여주는 영화이다. 공포와 절망의 이미지로 가득찬 이 영화의 암울한 분위기는 고통스러운 악몽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이야기는 기승전결에 따른 극적 구조를 해체하고 있다. 대신 과감한 생략에 의한 흐름의 분절과 다양한 시청각적 상징을 통해 광기의 세계를 구성해간다. 외롭게 살아가는 간장병환자 헨리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여자를 만나 도저히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아기를 떠맡게 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현실과 꿈의 구분이 애매한 경계에서 돌연변이에 의한 아기를 구제하려는 헨리의 노력이 펼쳐지지만, 결국은 가정이 파괴되고 헨리는 아기에게 몹쓸 짓을 하게된다. 폐소공포증을 불러 일으킬 것 같은 공간과 암울하며 역겹기까지 한 환상이 헨리의 무의식의 흐름을 따라 악몽처럼 펼쳐진다.

린치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도스토예프스키나 카프카의 소설 주인공처럼 선과 악의 경계를 수없이 넘나드는 복잡한 캐릭터이다. 감독은 언제나 캐릭터의 어두운 내면과 무의식의 세계에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눈에 보이는 세계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얼마나 중요하며, 인간의 본성은 선악이 뒤섞여 있음을 역설하는 것이다.

빛과 어둠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시각 이미지와 낯설고 불길한 느낌을 주는 자극적인 음향효과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문다. 주인공 헨리의 무의식세계를 끊임없이 탐구해 들어가는 이러한 표현 방식은 현대인의 잠재된 소외의식과 억압된 욕망에 관한 고통스런 절망과 공포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편장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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