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금 오랜 분단의 아픔속에 또 하나의 고민에 빠져 있다. 그것은 90년대 들어 마이너스 성장의 악순환에 빠져 있던 와중에 지난해 여름 덮친 미증유의 수해에다 농업구조의 취약성까지 겹쳐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북한상황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다.이같은 상황을 대하는 우리 정부와 국민의 정서는 일종의 이율배반적인 갈등에 빠져 있다. 한편에서는 오랜 남북간의 대결구도속에서 북한의 불행을 곧 우리의 다행으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오랜 체제경쟁속에서 정착된 당연한 심리일지도 모른다. 이같은 우리의 사고를 뒷받침이나 하듯 우리쪽의 보도기관들은 북쪽의 불행을 처음에는 과장하는 듯한 경향도 엿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북한소식을 전담하고 있는 내외통신은 처음 그 피해가 2백50만톤이라고 보도했었다. 그러나 그후 국민정서가 북한동포들의 불행을 안타까워하는 쪽으로 기울자 피해를 25만톤이라고 축소발표한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우리의 오랜 체제대결에도 불구하고 북녘동포의 식량사정이 어렵다는 사실이 국제적으로 검증되고, 또 그 피해의 참담함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으로 알려지자 우리의 동포애가 북쪽동포에 대한 지원으로 기우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은 유엔의 세계식량계획이나 세계 인도주의단체들 그리고 주변국가들도 식량위기의 북한을 지원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생각컨대 남북의 대결정치와 동포애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성격을 달리하는 두 현실을 너그러운 동포애를 발휘해 풀어가야 할 것으로 믿는다. 북한의 식량위기가 지금 세계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데도 우리 정부만 유독 북한의 식량사정이 아직은 알려진만큼 위기상황은 아니라고 고집한다. 주민들을 위한 식량이 군량미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어 식량을 보내면 남침기도만 도와주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어려운 때일수록 대결의 고삐를 더 조여 남북교섭의 고지를 선점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같은 대북한 정책기조가 지금 우리가 취할 최선의 정책인가에 대해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너무 많다. 혹자는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켜보면서 통일원의 역할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다행히도 그 동안의 국민정서는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으로 굳어졌다. 이는 우리 민족이 취할 당연한 도리로서 나는 동포애가 체제와 이념의 차이를 극복해 가고 있는 점에 무한한 민족적 긍지를 느낀다. 문제는 정부의 정책전환이다.
국내 6대종단을 비롯, 시민단체들이 뭉쳐 북한동포돕기 범국민운동을 전개하면서 이 운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월소득의 0.3%를 우리 민족 서로돕기운동에 기탁하기를 호소하고 있다. 월수입 1백만원인 가구는 3천원, 월수입 2백만원인 가구는 6천원을 북한동포 돕기에 갹출하자는 것이다. 식량위기에 처한 북한주민들에게 우리가 누리는 풍요의 0.3%를 돌려줌으로써 동포를 굶주림에서 구해낼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보람된 일인가.
그 어느날 우리가 통일을 이룩했을 때 북한동포들이 어려움을 겪었을 때 우리는 뭘 했느냐는 자문자답이 끝까지 우리를 따라다닐 것이 틀림없다. 이 운동이 큰 성과를 내기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차제에 정부측에 솔직한 의견을 말하고 싶다. 정부는 정부대로 일반 국민이 갖는 정서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대북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같은 정책은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또 명실공히 통일지향적이어야 할 것이다. 그와 같은 정책을 때로는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국민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우리민족 서로돕기의 정서까지 대결의 정치논리로 돌려놓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원화시대에는 통일정책도 다원화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민간단체의 북한동포돕기운동을 신뢰해 국민의 정서를 수렴토록 하고 다음 단계에 정부와 민간이 진솔한 협의를 거쳐 북한을 돕는다면 그것은 정부와 민간이 모두 바라는 길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북한사회가 안정되고 남북의 격차가 줄어들면 그것이 바로 평화통일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아시아시민사회운동연구원장>아시아시민사회운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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