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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통제 피해 희망의 남으로/귀순 최승찬씨 탈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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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통제 피해 희망의 남으로/귀순 최승찬씨 탈북기

입력
1996.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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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로… 바다… 강… 56시간 사투/구조후 남인지 북인지 몰라 가명 대답최승찬씨(29)는 육로와 바다, 강을 헤치며 무려 56시간 동안 사투를 벌인 끝에 자유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최씨가 탈출을 결심한 것은 지난달. 거의 하루에 1∼2명씩 올들어 지금까지 30여명이 굶어 죽어가는 현실을 직접 목격했다. 심지어 부모가 먹을 게 없어 아기를 목졸라 살해한뒤 자신들도 자살하는 사례마저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북한당국의 통제는 갈수록 심해져 마치 「감옥에 갇힌 짐승」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최씨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은 남한으로의 탈출이었다.

3년전까지 특수전부대에 있을 때 몇차례 남한 TV를 볼 수 있었다. 남한이 생각보다 잘산다는 실상을 알게 되었고 평소 남한 사회를 동경해 왔다. 이달초 탈출 경로를 정한 뒤 적당한 시기만을 기다렸다. 잠복과 수영등은 특수전부대 침투훈련을 통해 충분히 숙달돼 있었다.

8일 하오 8시께 몰래 개성시 운학2동 집을 나서 예성강하구 벽란도로 향했다. 10여㎞를 걸으며 은신과 잠복을 되풀이한 끝에 벽란도부근 강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작은 게를 잡아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최씨의 바지호주머니에서는 게다리가 5∼6개나 나왔다. 은신을 계속한뒤 10일 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곧바로 강물에 몸을 던졌다. 달빛이 그리 밝지 않은데다 마침 만조때라 몰래 헤엄치기가 좋았다. 준비해간 도하용 구명동의를 목에 걸고 자전거튜브 3개를 묶어 몸을 의지하며 무조건 남쪽을 향해 헤엄을 계속했다.

예성강하류를 벗어나 중립지역인 한강입구에 접어들자 왼쪽으로 육지가 보였다. 황해남도 개풍군 당두포리였다. 이제 남쪽으로 3∼4㎞만 더 가면 남한땅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일념으로 계속 헤엄쳐갔다. 모두 10여㎞를 헤엄치는 동안 정신을 잃을 뻔한 순간들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드디어 11일 새벽 2시45분께 강화도 북장곶 돈대 한강하류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구두경고와 함께 서치라이트가 비쳤다.

경계근무중이던 해병 2사단 소속 손동현 상병과 석상범 이병이 「첨벙」하는 물소리를 듣고 즉각 소대장 박상혁 중위에게 보고, 조치가 이뤄진 것이다. 해병장병들은 최씨가 바로 코앞에 있어 모포와 플래시등이 담긴 비상구출도구함이 연결된 로프총을 쏘지 않고 바로 구출해 낼수 있었다.

지난달 13일 바로 이 지점에서 탈북자들에 대비한 귀순 및 탈북자 상황조치훈련이 있었고 손상병등은 당시 직접 시범을 보였던 주인공들이었다. 운이 좋아도 한참 좋았다.

최씨는 불빛이 비치자 본능적으로 『나좀 어떻게 해주소. 3일동안 굶었습니다. 배고파 죽겠소』라고 소리쳤다. 우리측 해병장병들에게 구조는 됐으나 여전히 불안했다. 이곳이 남한인지 북한인지 몰랐기 때문에 일단 「한성호」라는 가명을 댔다. 완전히 탈진한 상태에서 최씨는 곧바로 차에 태워져 관계당국으로 옮겨졌다. 간단한 신문을 받은뒤 이내 응급조치를 받았다. 이어 언론보도를 위해 국방부내 의무대로 옮겨져 수십명의 기자로부터 질문과 카메라세례를 받았다.<홍윤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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