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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의 피해자들(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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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의 피해자들(장명수 칼럼)

입력
1996.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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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날마다 신문을 펴면 성폭력 사건이 실려 있다. 유치원 원장이 원생들을 추행하고, 한동네 남자 14명이 11세짜리 초등학생을 번갈아 성폭행하고, 자기집에 세든 여중생을 주인 부자가 성폭행하고, 밤길에 강간당해 임신한 중학생이 시험을 치르다가 출산하고, 5세짜리 여자아이를 한집에 사는 중학생이 추행한 사건등이 잇달아 보도되고 있다.그중에는 성도덕이 날로 문란해지고 있다는 개탄으로는 부족한 잔인한 사건들도 있다. 늙은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소녀라면 동네 사람들이 딱하게 여겨 도와줘야 할텐데, 부모없는 약점을 이용하여 마을 청년들이 성의 제물로 삼았다니 기가 막힌다. 70대의 아버지와 30대의 아들이 자기집에 세들어 자취하는 여중생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사건도 마찬가지다.

그 어린 피해자들은 어떻게 되었나. 마을 청년들에게 시달리던 소녀는 그 나쁜 놈들의 이름을 적은 유서를 남기고 농약을 마신후 중태에 빠졌고, 부자에게 성폭행당하며 낙태수술까지 받았던 소녀는 우울증에 빠져 교회의 보호를 받고 있다. 임신한 사실을 부모가 알면 맞아 죽고, 학교가 알면 퇴학당할까봐 복대로 배를 졸라매고 숨겼던 소녀는 시험을 치르다가 출산한후 자퇴서를 냈다. 그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어렸을때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를 40여년후에 살해했던 「김부남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어린 시절에 당한 성폭력은 악령처럼 한 여자에게 달라붙어서 그의 생을 파괴하게 된다.

성폭력의 피해자는 거의 여자이고, 여자들에게는 특히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점에서 모든 여자들이 공분을 느껴야 한다. 성범죄를 저지른 남자는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다해도 피해자보다 훨씬 나은 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까지는 그것을 여자의 숙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그 숙명을 거부하고, 어린 소녀들이 강요된 숙명으로 두번 세번 희생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성범죄의 안전지대는 없다. 유치원·학교·동네·가정조차도 안전하지 않다. 선생님·가족·친척·이웃이 가해자가 되고, 아주 어린애들도 표적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각자 내 아이를 보호하겠다는 생각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모든 부모가 연대하여 성폭력과 싸우고, 피해자들을 보호해야 한다.

시험치르다가 아기를 낳은 여중생, 아무리 배를 졸라매도 아기는 아홉달이 되면 밖으로 나온다는 사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던 소녀를 방치한 것은 우리의 공동책임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어머니들이 좀 더 활발하게 성폭력과 싸우는 운동에 참여해야 한다. 내딸, 남의 딸을 가리고 있을때가 아니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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