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낭만의 상징으로 여겨져전염병은 대개 역사무대에 첫모습을 드러낼 때는 맹위를 떨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약화한다. 매독도 마찬가지였다. 사망률도 그리 높지 않고 진행이 원만한 오늘날의 「노년성」 매독과는 달리 15∼16세기의 「청년」 매독은 그야 말로 무서운 기세로 퍼져 나갔고 후유증도 끔찍했으며 사망률도 높았다. 들불처럼 타오르던 매독은 한 세기도 못돼 오늘날과 비슷한 특성을 갖게 됐다. 속단일지는 모르나 에이즈도 결국 매독과 비슷한 운명을 겪으리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매독은 특히 17∼18세기에는 오늘날의 에이즈와는 사뭇 다른 취급을 받았다.
유럽의 궁정과 상류사회에서는 매독환자가 비난받기는 커녕 오히려 이 병에 걸리지 않으면 교양과 낭만이 부족한 증거로 여겨지기도 했다. 계몽철학자 볼테르가 프랑수아 1세의 매독을 칭송하는 시를 썼을 정도이다. 그에 비해 오늘날의 에이즈환자는 중세말의 유럽이나 최근까지 국내에서 나환자가 받았던 불가촉 천민대우를 받고 있다. 「질병은 질병일 뿐」이라는 현대의학의 교리와는 달리 질병과 환자에 관한한 여전히 「도덕적」판단에 의한 딱지가 붙어다니는 「비도덕적인」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의사학>황상익>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