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및 5·18사건 공판이 파행으로 치닫자 85년의 서울미 문화원 대학생점거농성사건 공판과 비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역사적 의미는 차이가 있지만 두 사건 모두 시대를 대표할 중요한 사건이다.12·12와 5·18사건은 검찰이 일부 군인들의 정권찬탈을 위한 군사반란으로 규정, 사법적 심판을 목전에 두고 있다. 서울미문화원 점거농성사건은 5·18 광주사태 당시 미국의 조치에 항의하며 대학생들이 미문화원 건물을 기습점거한 사건이었다.
5·18을 고리로 연결된 두 사건은 묘하게도 시대상황이 반전되면서 재판과정이 관심을 끈다. 변호인의 집단사퇴, 피고인들의 재판거부, 재판부에 대한 원색적인 불만 표출 등으로 공판이 순조롭지 못한게 공통점이다. 심리도 10차례를 훨씬 넘겨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이어지고 있다. 갖가지 소송기법이 다 동원되는 점도 흡사하다. 무엇보다 재판파행의 원인이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란 점은 똑 같다.
그렇지만 국민들은 두 사건을 같은 잣대로 보지 않는 것 같다. 시대상황을 보면 서울미문화원점거농성사건이 발생했던 때는 권위주의 시대였다. 당시는 대학생들의 행동에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국민들이 꽤 있었다. 동기도 동기지만 사법부의 신뢰도가 지금보다 떨어졌던게 사실이다.
12·12와 5·18사건의 공판이 열리고 있는 지금의 시대상황은 확연히 다르다는 게 공통된 생각인 것 같다. 누구나 인정하듯 지금은 문민시대로 사법부가 본래의 위상을 어느정도 찾았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서울미문화원점거농성사건 공판때 사법부가 공정하다고 강변하던 이 사건 피고인들은 지금 「정치권의 들러리」라며 사법부를 거꾸로 비난하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지금 사법부의 독립성과 공정성에 대해 의심하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몇차례 사법파동을 겪으면서 법조인들의 노력도 컸다. 사법부의 독립성이 새삼스레 문제돼 재판이 파행으로 진행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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