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초저녁 맨해튼 이스트강변에 100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하오 9시가 조금 지난 시각, 서치라이트가 상공을 헤집고 다니는 가운데 축포가 울렸다.이윽고 격렬한 전투가 벌이지기라도 하는양 포성이 강변을 진동하면서 뉴욕시의 독립기념일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형형색색의 섬광이 하트모양, 꽃모양, 나무모양을 30여분동안 그리며 시민들의 머리위에서 사라졌다.
17세기말 뉴잉글랜드에 이민온 청교도의 후손도, 18세기 노예상에 의해 미국땅에 끌려온 흑인의 후손도, 19세기 대륙횡단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미국땅을 밟은 중국인의 후예도 불꽃놀이의 휘황찬란함에 감탄을 쏟아냈다.
7월 4일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다. 독립기념 220주년을 맞은 이날 뉴욕은 물론 미국 전역에서 기념행사가 열렸다. 집집마다 성조기가 게양됐고 지역별로 각종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이스트강 상공의 불꽃을 바라보며 문득 독립기념일을 맞는 미국인들의 의식구조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몇시간 전만해도 텅 빈 거리에 100만의 인파가 빼곡이 모인 것은 진정 독립기념일을 경축하기 위해서인가, 단순히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서인가 의문이 들었다. 때마침 뉴욕타임스지는 공산주의국가의 몰락과 구소련의 붕괴로 전쟁의 위험이 사라지면서 미국인들이 애국심의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다뤘다.
미국인 개개인은 애국이라는 개념에 생소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는 새로운 형태의 애국심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영국의 조세정책에 항의, 독립을 선언한 미국은 냉전이 끝나면서 핵무기 대신 통상이라는 무기를 들고 세계각국에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주타깃은 한국을 비롯, 중국, 일본등 아시아지역이다. 얼마전 서울에서 미제차를 타며 통상공세를 펴던 미키 캔터 상무장관의 모습에서 미국의 새로운 애국주의의 단편을 보는 것 같다.
뉴욕시민들은 이스트강변에서 불꽃놀이를 즐겼지만 미국이라는 국가는 태평양에서 불꽃놀이는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무겁게 한다.<뉴욕=김인영 특파원>뉴욕=김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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