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대로 지난주말 한국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관련하여 가장 핵심적인 관문인 두 위원회(자본이동 및 경상무역외거래위원회, 국제투자 및 다국적기업위원회)에서 논의가 끝나 심사과정이 모두 완료됐다. 이제 OECD 이사회의 가입초청 결정과 국내 국회의 비준동의 및 정부의 비준서 전달절차를 남겨놓고 있다.그간 국내에서 OECD 가입을 둘러싸고 전개된 논의는 찬반 양극론보다는 가입시기에 대한 이견으로 종합할 수 있다. 정부의 입장을 포함하여 한국경제의 발전단계에 비추어 현 시점이 적합하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우선 경제개혁을 중심으로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면서 시간적 여유를 갖자는 신중론으로 대별된다. 특히 후자의 경우 멕시코사태에 따른 우려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멕시코가 겪은 자본금융시장의 위기는 국내 경제정책의 차질이 빚은 결과이며 OECD 가입 자체에 그 원인이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미룰 수 없는 과제
필자는 이 두 견해와는 좀 다른 시각에서 OECD 가입을 목표인양 서둘러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늦출 수만도 없다는 생각을 가져왔다.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한국경제가 국제경제의 운영에 있어서 주축을 이루는 OECD에 가입하여 협력을 강화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전환의 기회를 갖기 어렵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끌어온 국내 경제운영의 개선이나 제도의 정비를 OECD라는 「배움의 모임」을 통하여 실현해 볼 수 있다는 논리이다.
여기서 이해득실을 다시 따지고 싶지는 않으나 OECD 가입이 한국경제에 주는 가장 큰 이점이 위상제고에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실속없는 명분보다는 다른 선진경제국들처럼 자생적 성장기반을 확립하기 위하여 어떻게 발전방향을 설정하고 경제를 운영할 것인가를 실제로 터득하는 장소로서 OECD를 활용해야 한다. OECD는 협력기구이자 또한 토론의 장이기도 하다. 회원국들은 지금까지 체결된 규정(1995년 현재 약 180개)을 준수하도록 노력하는 한편 중요 국제경제문제에 있어서 협력을 추진하고 각국 경제에 대한 공개적 토론을 거쳐 필요한 권고도 해준다. 각국이 경제정책의 일관성, 투명성, 신뢰성 및 정합성과 같은 「기율」을 지켜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OECD 가입을 앞두고 한국경제가 추구해야 할 발전방향을 다시금 분명히 하고 또 여기에 맞추어 이제까지 등장한 과제들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점은 명백해진다.
필요한 것은 2000년대 어느 시점에 한국경제가 G7 대열에 선다는 전망과 같이 아무도 예측할 수 없고 또 책임도 안지는 장기구상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안정기반의 정착을 위하여 시장개방의 추진과 함께 어떻게 거시경제정책의 운영개선을 이룩할 것인가. 그리고 미시적·제도적 측면에서 어떤 방향으로 개혁을 추구할 것인가에 대한 실천계획을 수립하는 일이 시급히 요청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적 여건에 기초한 시장경제의 틀을 재확립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하여 몇가지 예를 든다면 우선 당장 산업 전반의 경쟁력 제고를 위하여 요소비용을 낮추는 과제가 등장한다. 또 선진국형 산업구조를 구축하려면 산업간, 산업내 부문간 연관효과 및 부문별 부가가치 생산성을 높이고 기술개발의 촉진과 함께 중소기업의 육성을 취지로 하는 산업정책의 수립이 요구된다. 금융산업만 하더라도 규제완화, 자율화의 추진 및 소유지배구조의 확립 등을 더 이상 논의만 거듭할 수는 없다. 또 OECD 내에서도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경쟁정책이나 경제력집중 문제에 있어서도 정부는 확고한 입장을 밝힐 단계에 와 있다.
○제도·질서 재정립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으나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OECD 가입이 갖는 의의는 무엇보다도 모양새를 갖추기보다는 실제로 한국경제의 모습을 재정비해야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OECD 가입을 계기로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병폐를 시정하는 한편 시장경제가 원활히 작동하고 경쟁이 촉진될 수 있도록 제도, 질서를 재정립하는 전기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 이외 앞으로 경제정책의 일관성과 실효성을 높이기 위하여 적절한 사후평가제도의 도입을 제안하고 싶다. 정부의 의욕적인 정책이 일단 발표된 후 과연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 사후적으로 객관적인 평가가 없다는 점이 아쉬우며 특히 규제개혁의 경우 더욱 절실하다. 독일의 「5현」제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당해부처가 아닌 제3의 권위자 또는 전문가그룹에 의하여 정부, 공공의 정책이 재검토될 때 비로소 국민에 대하여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끝으로 OECD는 어디까지나 경제주권을 존중하면서 상호이익을 모색하는 협력의 모임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따라서 한국경제 발전에 기여하도록 OECD 가입을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정책당국의 슬기를 기대한다.<서울대 교수·경제학>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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