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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함께 춤을/정일화 편집위원 겸 통일연구소장(남과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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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함께 춤을/정일화 편집위원 겸 통일연구소장(남과 북)

입력
1996.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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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자유가 피를 먹지 않고 자란다는 것은 놀랄만 한 일이다. 옐친이 자유민주주의 선거를 통해 공산주의자 주가노프를 제압한후 제2기민주정부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소련공산당역사 70년동안 1,000만명이상이 독재체제의 희생물로 사라졌다. 공포와 기아의 역사였다. 아직 공산주의독재가 남아있던 80년대말쯤의 소련에서도 이런 모습들을 역력히 읽을 수 있었다. 넓은 곡창지대의 어디엔가 양식이 아직 남아있을 법한데 교통난으로 곡물이동이 되지 않아 모스크바같은 대도시에서는 굶주림이 쌓여있었다. 빵 한개를 사기위해 100m도 넘는 긴 줄을 서고 있는 것이 이곳 저곳에 보였다. 러시아인들은 이 체제로서는 러시아가 세계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70년공산독재가 넘어질 때 뿌릴 재앙을 두려워하는 모습도 팽배했다.이번 선거에서는 공산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이 맹렬한 경쟁을 하는 바람에 어쩌면 어느 한쪽이 피를 흘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일었다. 주가노프후보가 이끈 50만핵심당원의 공산당은 옐친민주체제를 부패와 시회범죄 밖에 낳은 것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러시아는 공산주의시대 영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옐친의 자유주의자들은 러시아를 다시 공산주의 공포시대로 되돌릴수는 없다고 호소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상극인 공산주의자와 자유주의자가 선거라는 광장에 나란히 나와 여유있는 공개투표경쟁을 벌일수 있었던 것이었다. 과거 레닌이나 스탈린이 수많은 인명을 희생하면서 공산체제를 탄생시켰던 것처럼 러시아민주주의도 결국 피를 먹고 자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믿어지지 않게도 공산주의자와 자유주의자가 평화적으로 나란히 광장에 나와 서로를 비난도 하고 자기주장도 하면서 인민의 지지를 호소했고 또 선거도 평온하게 실시됐던 것이다. 보복을 외치는 목소리도 없었다. 바로 엊그제까지 소련땅 여기저기에 사람죽이는 수용소군도(gulag)가 널려있었고 시베리아에는 정치범들이 살고 있으나 아무도 역사보복을 들고 나오지는 않았다. 유권자들은 과거를 재판하기 보다는 미래를 바라보는데 더 관심을 쏟았고 결국 미래를 위해서는 주가노프의 공산주의보다는 옐친의 자유주의가 좋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춤을 출만한 것이다.

북한은 러시아총선을 좀 색다른 눈으로 지켜봤다. 주가노프의 옐친비판론이 승리하기를 기대했다. 자유민주주의는 부패와 무질서와 사회범죄를 낳기만 하며 대외적으로는 서방종속국으로 국가위상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스탈린이나 브레즈네프가 구사하던 강한 공산당정부로 되돌아 가야한다는 것이 주가노프의 주장이었다. 북한은 주가노프가 이기면 김정일체제에 득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옐친을 대놓고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주가노프의 주장을 받아 자유민주주의 워험론을 많이 폈다.

새로 들어서는 제2기의 옐친정부가 한반도정세진전에 직접적으로 유리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는 볼수 없다. 러시아에는 아직 남북한등거리 외교를 포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총선은 자유주의로의 전환이 피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것과 과거보다는 미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시위하고 있어 만일 북한이 영향을 받아 공산독재의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내려놓게 된다면 한반도장래에 그것보다 더 훌륭한 도움을 줄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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