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국정 수행에서 중앙정부의 각부처와 청와대 보좌진의 조화는 역대 정권의 숙제와도 같은 과제였다. 양자는 보완적이면서도 경쟁관계에 있어 왔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들어 신노사관계정책, 신재벌정책 등 개혁성향의 정책에서 청와대 관계 보좌진들의 주도적 역할이 눈에 띄었었다.이번에 김영삼 대통령이 백지화시킨 「21세기 도시구상」도 청와대 정책기획실이 건교부와 국토개발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4개월동안의 연구끝에 만들어 낸 것이라 한다. 더욱이 이 계획을 주도한 담당수석은 대통령의 재가를 받기도 전에 이 계획안을 발표를 전제로 하여 청와대 기자들에게 사전 브리핑을 했다가 결과적으로 취소되는 해프닝을 빚었다.
대통령이 국정을 펴나가는데 있어서 상시적으로 가용할 수 있는 양대조직은 라인조직인 중앙행정기관과 참모조직인 대통령비서실, 이들을 어떻게 이용하는가는 대통령의 국정집행스타일에 따라 다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국정의 생산성이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판단의 기준은 역시 역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국정집행관행을 보더라도 공식 라인조직의 국가기관인 중앙행정기관을 골간으로 하고 청와대비서실은 역시 본래의 기능대로 보좌기관으로 머물게 하는 것이 국정의 능률을 제고하는데 효율적이다. 청와대 보좌진은 대통령과 중앙정부의 각부처장관을 연결시켜 주는 고위 매개·조정기능을 하는 것에 머물러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청와대측이 자제력을 발휘할 줄 모른다면 자신들의 역할을 단순한 매개기능에 붙들어 둘 수 없다. 예나 이제나 권력자와의 거리 그 자체가 힘의 척도가 된다. 청와대보좌진은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므로 그것 자체로서 힘이 따르게 된다. 본질적으로 권력집중이 용이하게 돼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비서정치」가 물의를 빚어 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반세기의 짧은 헌정사에서도 우리는 간헐적으로 이를 체험해 왔다. 비서실이 정책의 주도권을 잡는 경우 의견수렴과 공론화 과정이 생략되거나 충분하지 못해 시행착오를 범하기가 쉬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앙정부 각부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국정집행의 효율을 격감시킨다.
비서실은 행정부처조정 기능을 갖게 마련이지만 정책의 입안·집행·감독 등 국정을 주도해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크다. 「보이지 않는 손」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책의 통제·조정도 소리내지 않게 하는 것이 부작용도 적고 생산성이 높다. 예를 들어 재정경제원 등 정책의 통제·조정기능을 갖고 있는 부서를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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