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보십시오, 국내기업이 본사를 해외에 두고 서울에는 지사를 차리는 일이 곧 생길겁니다』최근 만난 한 기업인의 장담이다. 몇년사이 거세게 불고 있는 세계화 국제화의 바람을 타고 기업들이 속속 해외로 나가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그는 기업들이 명칭은 서울본사나 해외지사(또는 지역본부)를 유지할지 몰라도 기능과 역할은 뒤바뀔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미 굴지의 그룹들이 유럽이나 동남아 중국 등에 지역본부를 설치키로 했는데 이것이 사실상 「해외본사」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산업공동화나 기업의 해외진출 러시는 새로운 현상이나 문제가 아니다. 정부주도의 산업정책이 태어났을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특정산업을 정해 특별한 지원책을 펼 경우 지원대상에서 제외된 분야는 스스로 살아남는 길을 찾아야 하는데, 탁월한 기술력이나 자금력이 없는 보통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척박한 이 땅을 떠나는 것이다. 선택받은 산업을 제외하곤 이 땅에 남을 이유가 없으니 산업공동화는 당연한 귀결인 셈이다.
기업인들은 이미 6공때부터 정부에다 대고 수없이 기업의 해외탈출과 이에 따른 산업공동화의 위험을 예고하며 대책수립을 요구했으나 마이동풍이었다. 정부가 더 걱정해야 할 일인데도 말이다.
기업들이 경제활동의 무대를 세계로 넓히는 것과 국내를 외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다. 국민을 잘 살게 하고 국가경제를 살찌게 하려면 기업들이 이 땅에서 활동하도록 해야 한다. 기업들은 활동무대로 안팎을 가릴 이유가 없지만 국민생활을 책임진 정부는 가능한한 기업들이 국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도록 해야 한다. 선진국 후진국을 막론하고 갖은 혜택을 주며 외국기업을 유치하려는 것도 국내경제 국민생활을 부추기기 위한 것이다.
기업들의 잇단 해외탈출, 심화하는 산업공동화, 주력산업의 추락에 따른 국가경제의 위기.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을 기업인들은 정부규제에서 찾는다. 고금리 고임금 고지가 고물류비용 저효율등 많은 요인이 있지만 정부규제만큼 기업활동을 옥죄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유럽이나 동남아등에 공장을 지을라치면 정부에서 무엇을 도와줄까 방법을 찾아주고 혜택을 주려고 애쓰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러면 안된다, 저러면 안된다는등 규제투성이고 섬기고 챙겨야 할 곳이 너무 많아 불만이 턱에 차있다.
침체의 늪에 빠진 우리 경제상황이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도 더욱 악화할 것으로 보이자 정부가 부랴부랴 경제운영대책을 내놓고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민간기업이 참여하도록 해외현금차관도입을 허용하고 담배인삼공사같은 공기업을 조기매각키로 하는등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특히 사회간접자본 확충과 관련, 그동안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특혜성 유인책을 내놓아 기업들을 어리둥절케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파격적인 시책들을 보는 대부분의 경제인들은 여전히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달콤한 사탕을 주기보다 손발을 묶고 있는 규제의 밧줄을 끊어주길 고대하고 있다.
정부가 규제의 틀속에 안주해 있는한 기업들은 「해외본사 서울지사」의 미련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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