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의 인생역정/쿠데타군 맨주먹 대항 등 불꽃같은 삶/체첸공격 악수·총선 패배에 한때 좌절/“건강 악화 끝장” 예상일축 화려한 재기『사나이는 거대하고 밝은 불꽃처럼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가능한 한 최대로 밝게 타올라야 하며 그러다 보면 자신의 모든 것이 소진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불꽃보다는 훨씬 낫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이같은 승부사 기질이 그를 다시 재선고지에 올려놓았다.
1월 한자릿수의 지지율로 25% 안팎의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 후보에 맞설 때만해도 그의 재선은 불가능한 듯 했다. 그러나 그는 6개월만인 6·16대선에서 지지율을 35%로 끌어올렸고 결선투표에서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의 인생은 불가능에 대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 시절 공산당을 탈당할 때, 맨주먹으로 강경 쿠데타군에 맞서 싸울 때, 의회의 무장세력을 탱크로 진압할 때, 그는 불가능하게 보였던 것을 가능한 것으로 바꿔 놓았다.
그는 이미지 변신에도 성공했다. 대선과정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디스코를 추었고 연금생활자에는 믿음을 안겨주는 유연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또 재선 승리를 위해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알렉산데르 코르자코프 경호실장 등 측근들을 크렘린에서 축출하는 결단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락으로 떨어지는 절망의 순간도 있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행사해온 그는 94년 12월 체첸에 대한 공격명령을 계기로 끝없는 추락의 길을 걸었다. 체첸사태로 그동안 쌓아온 「러시아 민주화의 대부」 이미지를 잃었고 급진개혁정책의 선구자 예고르 가이다르 전 총리대행이 그를 떠났다.
더욱이 자신이 생명을 걸고 몰아냈던 공산세력이 지난해 12·17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화려하게 재기, 뼈저린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육체적인 고통도 찾아왔다. 지난해 2월 알마아타 독립국가연합(CIS)정상회담에서 보좌관들의 부축을 받아 처음으로 나약한 면을 내보인 그는 7월과 10월 두차례나 심장병으로 입원, 「옐친은 끝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건강문제는 앞으로도 그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타협을 모르는 그의 성격탓이고 두주불사에 밤낮을 가리지 않는 일 욕심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강인한 성격은 많은 비토세력을 만들어냈다. 주가노프는 12·17 총선유세에서 『한번이라도 그를 대한 사람이라면 그를 민주주의자로 부르지 않을 것』이라며 타협을 모르는 독선적인 성격을 꼬집었다. 그는 결선투표에서 승리, 재선에 성공했지만 주가노프를 선택한 40%의 지지자들과 기권한 5%의 유권자들을 포용하는 보다 넓은 가슴을 보여줄 때가 된 것같다.<모스크바=이진희 특파원>모스크바=이진희>
◇옐친 연표
△1931년 2월1일:우랄지역 스베르들로프스크(현예카테린부르크) 출생
△61년:공산당 입당
△85∼86년:구소련 공산당 중앙위 서기
△85∼87년:모스크바시 공산당 제1서기
△87∼89년:구소련 국가건설위 수석부위원장(각료급)
△90∼91년:구소련 인민대표대회 대의원겸 러시아연방공화국 인민대표대회 대의원, 러시아연방공화국 최고소비에트 의장
△90년 7월:공산당 탈당
△91년 6월12일:러시아연방공화국 대통령 당선
△91년 8월:구소련 보수파 쿠데타 기도 저지
△92년 1월:급진경제개혁 시작
△93년 9∼10월:러시아연방의회 해산
△94년 12월:체첸침공
△95년 7·10월:심장병 입원
△95년 12월17일:총선, 공산당 승리
△96년 6월 16일:러시아 대선 1차선거
◎승리요인/“개혁 지속” 호소전략 주효/레베드 즉각 영입·막판 득표율올리기 큰 성과/금권·관권 앞세운 물량작전·언론장악도 한몫
러시아 국민들은 결국 개혁을 선택했다. 민주화 개혁의 계속이냐, 공산체제로의 복귀냐의 갈림길에서 유권자들은 건강이상설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개혁을 내세운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게 또한번 러시아를 맡겼다. 대선 결선투표가 보여준 가장 큰 특징은 구이념과 노선을 이어받은 공산당의 한계다.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 후보가 공산당에 대한 강한 비토세력으로 인해 40% 지지벽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주가노프는 1차투표에서 탈락한 알렉산데르 레베드와 그리고리 야블린스키 등 군소후보 지지 유권자 2,500여만명중 약 25% 가량의 지지를 얻는데 그쳤다. 이로 인해 그는 다게스탄 케메로보 알타이 아무르 등 전통적인 공산당 강세지역을 제외한 1차투표 우세지역에서 옐친에게 역전을 허용했다.
옐친의 승인은 막판 「투표율 올리기」전략이 적중한 탓으로 분석된다. 옐친은 결선투표를 앞두고 가진 4차례 TV유세에서 『옐친이냐 주가노프냐를 선택하기에 앞서 조국의 진정한 미래를 위해 투표에 참석해 달라』고 호소했다. 옐친 진영의 이같은 노력은 고정표가 많은 주가노프가 상대적으로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봉쇄했다. 2차 투표율이 1차에 비해 10%가량 낮아지는 유럽국가들에 비교하면 이번 결선투표율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또 옐친은 1차 투표직후 「킹 메이커」로 부상한 레베드를 재빨리 영입, 권력전면에 내세움으로써 군소후보의 지지표를 끌어 들이는 소위 「레베드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옐친 진영의 또다른 승인은 금권과 관권을 앞세운 물량작전이다. 그는 천문학적인 선거자금을 동원, 엄청난 광고방송을 내보냈다. 그는 또 각지역 유세에서 특성에 맞는 개발공약을 내놓았으며 TV방송등 언론을 확고히 장악했다.<모스크바=이진희 특파원>모스크바=이진희>
◎공산당의 진로/사회주의당 변신 시도할듯/폴란드 사민당 모델 온건·중도세력 결집 모색/강경파 저항 등 최악 상황땐 당두쪽 가능성도
러시아 공산당은 당수 겐나디 주가노프의 대권도전이 끝내 실패로 돌아감에따라 향후 진로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주가노프가 공산당내 온건세력과 중도세력을 결집, 당의 간판을 바꿀 것으로 보고 있다. 유력 일간지 이즈베스티야는 이미 1차투표 직전에 주가노프가 러시아 공산당내 2인자 겐나디 셀레즈노프 국가두마(하원)의장, 아나톨리 루키야노프 전소련 최고회의의장 등과 함께 사회주의 정당으로의 변신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공산당 지도부가 당의 간판을 내리고 재창당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7·3 대선 결선투표는 공산당이 기존의 이념과 노선으로 집권할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였다. 공산당의 지지기반인 노년층 연금생활자들이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자본주의의 맛을 본 젊은층들이 사회의 주도세력으로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공산당의 변신은 옐친대통령이 공산당의 활동정지를 선언할 가능성에 대비하는 「생존책」의 일환으로도 모색되고 있다.
주가노프는 당 변신의 모델로 지난해 대선 결선투표에서 레흐 바웬사 대통령을 물리치고 재집권에 성공한 폴란드 사민당(구공산당)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주가노프 등 핵심지도부는 당의 색깔을 분명히 하기 위해 극좌 강경파 인물은 배제하고 비공산주의자인 세르게이 바부린 하원 안보위원장과 영화제작자 스타니슬라프 고보루힌 등을 끌어들일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공산당의 변신이 별다른 후유증없이 손쉽게 이뤄질 것 같지는 않다. 결선투표 패배는 주가노프의 노선변화에 「불만스런 침묵」을 지켜온 강경세력에 저항할 명분을 줄 수 있어 최악의 경우 공산당이 두동강나는 결과가 빚어질 수도 있다.<모스크바=이진희 특파원>모스크바=이진희>
◎떠오르는 차기 주자들/총리 유임 체르노미르딘 후계자 위치 일단 유리/레베드·모스크바시장 리즈코프 부상/일류신 비서실장 등 가신그룹도 물망
보리스 옐친 이후 차기 대권주자는 누가 될 것인가.
옐친대통령은 4일 대선 승리가 확정되자마자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총리(58)의 유임을 발표했다. 옐친이 이처럼 발빠르게 「신임 총리」를 선임한 까닭은 자신의 건강문제와 관련, 혹시 조기에 불거질지도 모를 차기 대권주자 후보들의 경쟁과 암투를 막기 위해서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옐친의 이같은 포석은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체르노미르딘 총리가 차기 대권주자 후보들중 유리한 고지에 올라 선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차기대권주자 후보들은 옐친의 후계자리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할 수 있는 총리직을 희망해왔기 때문이다.
온건보수성향의 체르노미르딘 총리는 러시아의 돈줄이라고 할 수 있는 석유가스업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92년부터 내각을 무난히 이끌어 왔고 리더십이 있으며 국민들의 지지도 높다. 그러나 체르노미르딘이 옐친의 후계자라고 선뜻 동의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대선 1차투표에서 3위를 한 뒤 옐친 진영에 합류, 국가안보위원회 서기직을 맡은 퇴역장성 알렉산데르 레베드(46)가 옐친이 후계자라고 언급할 정도로 현재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차기 대권주자 후보중 하나이다. 온건민족세력을 대표하고 군부 소장층의 지지를 받고 있는 그는 그러나 자체조직과 권력핵심부내 인맥이 없으며 안보문제외에는 전문지식이 없는 것이 약점이다.
모스크바시장에 재선된 유리 리즈코프(59)도 차기 대권주자로 손꼽혀 왔다. 총리물망에 여러차례 올랐으나 모스크바 시장직을 고수해온 그는 전국적인 지명도가 다소 떨어지나 모스크바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있다.
대선 1차투표에서 4위를 한 그리고리 야블린스키(44)도 급진개혁파를 대표하는 인물로 결코 무시못할 존재다. 구소련 경제부총리출신의 그는 옐친으로부터 경제 제1부총리 제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급진개혁파들이 뭉칠 경우 「강력한」 대권주자 후보가 될 가능성이 있다. 선거운동을 총지휘한 아나톨리 추바이스 전 경제제1부총리(38)도 차기와 관련해 눈여겨 볼 만하다. 또 스베르들로프스크(현예카테린부르크) 공산당 제1서기 시절부터 옐친을 보좌해 온 빅토르 일류신 비서실장(48)도 무시할 수는 없다. 레베드를 정계에 입문시키고 함께 러시아공동체회의당을 창당한 유리 스코코프 전국가안보위원회서기(48) 역시 빼놓을 수 없으며 예고르 가이다르 전 총리서리(38)의 재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이장훈 기자>이장훈>
◎결선투표 이후의 절차
▲중앙선관위는 15일 이내 선거 결과를 확정 발표한다.
▲대통령 당선자는 중앙선관위의 공식 선거 결과 발표후 30일 이내 취임한다.
▲당선자는 총리와 각료 인선명단을 의회에 보낸다.
▲의회는 대통령이 제안한 총리 및 각료 후보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3번 모두 거부하면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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