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드라마·영화 만들기는 기억의 창고에서 램프를 켜는 것과도 같다. 램프 불빛 아래 추억에 쌓여 있는 먼지를 털어냄으로써 과거의 애틋한 희망과 기쁨, 슬픔과 아픔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 넣는다. 역사의 흐름 위에서 우리의 상처를 객관화하는 그 행위는 정신과 의사의 진료와도 닮아 있다.우리 현대사에는 일제 강점과 한국전쟁이라는 두 개의 깊고 큰 상처가 각인돼 있다. 방송 드라마는 매년 6·25와 광복절이 되면 특집을 내보낸다. 올해의 6·25 특집극 「낫」(MBC) 「구하리의 전쟁」(SBS)은 모두 이데올로기 전쟁의 무모함, 비극성등을 휴머니즘으로 치유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 드라마들에서 화해에 이르는 모습은 우리가 대립과 반목으로 점철됐던 냉전시대의 의식에서 분명히 벗어나고 있는 중요한 신호로 해석된다.
6·25 특집이 지나가자 「장군 마에다」라는 영화가 강점기와 관련된 「일본 정서」문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 영화의 제작국은 미국, 배경은 거의 스페인으로 되어 있다. 원제인 「MAYEDA」앞에 「장군」을 갖다 붙인 것부터 「무사는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등의 선전문구까지 「사무라이」정신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은 가벼운 오락·모험영화이다. 비합리적이고 과대망상적인 「사무라이」정신은 영화 곳곳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이 영화 상영저지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이제는 다른 각도에서도 고려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영화내용도 별 것 아니지만, 그 보다는 지금이 월드컵대회 한일공동주최를 6년 앞두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월드컵 공동개최를 흔쾌히 받아들였을 때, 양국은 힘을 합해 세계인 앞에서 이 대회를 멋진 행사로 성공시켜야 한다는 약속을 한 셈일 것이다.
강점기와 관련해서 일본이 사과하고 보상해야 할 부분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월드컵은 체육대회만이 아니라 문화대회이기도 하다. 정부는 월드컵을 성공시키기 위해 과거의 숙제들과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는 지금의 반일정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이제부터 훨씬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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