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에마뉘엘 엑스는 콩쿠르야말로 예술을 평가하는데 가장 적절하지 못한 방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예술에 대한 약간의 이해만 있어도 이 말에 공감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콩쿠르가 없어질 리는 없다. 예술행위가 악에 받친 경쟁처럼 보이는 면이 있더라도 신인에게 자극을 주고 신인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콩쿠르가 실행되는 것 같다. 그리하여 세계의 정상이라는 예술인들은 화려한 콩쿠르 입상경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우리나라에도 이미 상당한 연륜이 쌓인 콩쿠르들이 있고 이것을 거친 사람은 「인정」을 받고 있다. 그런데 콩쿠르에 대한 관심도나 콩쿠르가 진행되는 과정등은 외국과 우리나라가 별 차이 없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차이가 다른 데 있는 것이다. 일반이 예술에 대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 곳에서는 콩쿠르를 신인발굴의 방법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행위는 항상 「현재」 보여지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예술가의 연륜도 예술행위가 쌓여지는 것으로 얻어진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콩쿠르가 예술행위 자체로 오해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권위있는 콩쿠르인지 아닌지를 따지기에 앞서 일단 콩쿠르경력이 예술행위로 인정받는 곳에서는 너도나도 즐비한 콩쿠르경력을 과시할 수 밖에 없다. 간혹 놀라운 경력의 소유자가 수준미달의 연주를 하는 일이 벌어져도 그럴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특이한 현상은 오디션이 정착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선 콩쿠르와 오디션이 혼동되고 있다. 콩쿠르는 한 순간의 발표에 의해 「순위」가 매겨지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령 성악콩쿠르에 우승한 사람이라고 무조건 좋은 오페라가수가 될 수는 없다. 반면에 오디션은 콩쿠르와 달리 오디션을 하는 주체에 의해 다각적인 면이 검토되지만 오디션을 하는 이유는 항상 구체적인 공연을 위해서다. 그런 까닭에 어느 한 공연 오디션에 선발되지 않은 사람이 이튿날 다른 오디션에서 주역으로 뽑힐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것이다.
상금이 걸려 있거나 대대적인 후원자에 업히지 않으면 오디션을 외면하며 그저 「서류」로만 인정받으려는 사회는 별로 앞날이 밝다고 볼 수 없다. 공연예술은 무엇보다 「몸」을 보여야 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삶의 모든 인간관계도 오디션일는지 모르겠다.<조성진 예술의 전당 예술감독>조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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