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나 비행기를 타고 긴 여행을 할 때, 당신은 옆자리에 누가 앉기를 바라는가. 그 대답속에 당신의 정신적인 나이가 들어 있다.첫 눈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을만큼 멋진 이성이 앉았으면, 그래서 로맨스가 시작되었으면 하고 꿈꾸는 사람은 나이가 몇살이든 청춘이다. 로맨스까지는 버겁고 기분좋게 얘기가 통하는 이성이었으면 하는 사람은 노화가 약간 진행되었으나 아직 설렘이 남아 있는 상태다. 이성이 옆에 있으면 불편하니 동성이었으면 하는 사람, 이성이든 동성이든 관심 없는 사람, 편한 자세로 잠이나 자게 빈자리였으면 하는 사람은 설렘이 소진된 사람이다.
비행기에서 옆자리의 남자에게 반했던 한 친구가 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옆의 남자가 같은 소설을 읽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반가워서 소설 얘기로 대화를 시작했고, 작가들 얘기와 인생 얘기로 대화가 이어졌다. 마음이 너무나 잘 맞아 스무시간이 언제 지났는지 모를 정도였다. 공항에서 그들은 아쉽게 헤어졌다.
그는 그 남자를 다시 만난 적이 없지만, 참 근사한 남자였다는 아련한 감정이 몇년째 지속됐다. 그의 이야기는 친구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는 그 남자가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했고, 50대의 권태를 몰아내는 청량제로 가끔 그 「비행기 연애 사건」을 화제로 삼았다.
그러나 친구들의 상상은 어느날 덧없이 깨졌다. 주말에 친구들 몇명이 북한산으로 등산갔다가 그 남자와 마주쳤는데, 그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하는 것을 지켜본 친구들은 나중에 일제히 투덜거렸다.
『저 남자가 그 사람이야? 와 실망했다』
『네 눈에는 그 사람이 멋있어? 내 눈에는 금이빨 밖에 안 보이던데』
친구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구박하자 그는 겨우 항변했다.
『너희들은 한번 쓱 보고 어떻게 사람을 평가하니? 그 때는 분명히 금이빨이 없었는데. 사실은 금이 살짝 보이던데 금이빨이라고 과장해야 겠니?』
「비행기 연애 사건」은 사라지고, 우리에겐 「금이빨 사건」만 남게 됐다. 금이빨은 물론 그 친구의 추억을 전혀 훼손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그 남자가 멋지다고 말한다. 그러나 친구들은 김이 샜다. 우리가 그 남자에게 반하지 않은 것은 비행기안에서 같은 소설을 읽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먼 곳으로, 아주 먼 곳으로, 태양과 바람속으로, 훌쩍 떠나고 싶은 여름이다. 당신은 옆자리에 누가 앉았으면 좋겠는가. 옆자리가 비어서 잠이나 실컷 잤으면 하고 원하는 여행도 사실 나쁜 여행은 아니다. 그러나 이왕이면 시집과 소설, CD 몇개를 챙기면서 그것들을 좋아하는 멋진 이성이 옆에 앉기를 바라는 것이 더 여행답지 않겠는가.<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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