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수·현인·백설희 등 숱한 스타 배출도원로 대중음악 작곡가 박시춘씨(본명 순동)가 지난달 30일 하오8시 서울 송파구 가락동 프라자아파트 5동 1001호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1913년 경남 밀양시 내일동에서 태어나 밀양전보를 졸업한 박씨는 1931년 우라타(포전)연예단 시절 「몬테카를로의 갓난이」 「어둠 속에 피는 꽃」등을 발표하며 작곡을 시작했다. 그는 19세에 만들어 당시 무명가수였던 남인수의 노래로 인기를 얻은 「애수의 소야곡」을 비롯, 마지막 작품인 「돌지 않는 풍차」(65년·문주란 노래)까지 3,000여곡을 발표하며 한국 가요계를 이끌어왔다. 「신라의 달밤」 「이별의 부산정거장」 「비내리는 고모령」 「낭랑18세」 「전선야곡」등의 히트곡을 만들었으며 현인 백설희 등 수많은 가수들이 그의 곡을 통해 큰 인기를 누렸다.
그는 대한레코드작가협회 초대 회장(58년), 한국연예협회 초대 이사장(61년)을 지냈으며 예총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 가요발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중음악 작곡가로는 처음으로 82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례비씨(74)와 장남 재원씨(미국에서 개인사업) 등 3남3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현대중앙병원 영안실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3일 상오 10시 한국연예협회장(이사장 석현)으로 치러진다. 장지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일정리. (02)476―1899<권오현 기자>권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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