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옆에 돗자리가 깔려 있다. 그 위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그의 손에는 책이 들려 있다. 그의 옆에는 그의 아내인 듯한 여자가 앉아 있다. 그녀 역시 손에 책을 들고 있다. 그들의 모습은 평화로워 보였다.휴가를 얻어 쉬는 날의 모습을 이처럼 묘사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어쩌면 소설 속의 장면이라고 할는지도 모른다. 별로 자신의 일같지 않기 때문이거나 혹은 현실적으로 있을 법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 중의 더러는 계곡 옆에 돗자리를 깔고 있는 일까지는 그리 낯설지 않게 느낀다 해도 남자와 그의 아내인 듯한 여자가 나란히 앉아 책을 읽고 있다는 데는 유행 지난 옷을 입고 번화가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는 듯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중의 어떤 사람들은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보내고 싶은 휴가가 바로 이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량생산되는 똑같은 상품을 쓰고 유행을 좇으며 비슷한 감각을 갖고 비슷한 생각들을 하면서 서로의 욕망을 모방하며 사는 오늘날의 사람들은 휴가도 거의 비슷한 형태로 보낸다. 휴가에 대한 자신의 진정한 욕망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친구나, 이웃, 동료의 욕망을 모방하게 되고 또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친구나 이웃, 동료가 되어 그들의 모방욕망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별 차이 없는 휴가를 보냈다는 데에 동질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학업 또는 근무를 일정한 기간 쉬는 일이 휴가라면 그것은 곧 일상생활에서 벗어난 은밀한 즐거움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가장 사적인 즐거움이 된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드시 어딘가 소문난 곳에 가야 한다거나 누구나 다 하는 근사한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이 은밀한 즐거움을 잃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 은밀한 즐거움을 회복할 방법은 없을까. 일상생활에서 벗어난 휴가의 은밀한 즐거움과 아주 흡사한 즐거움이 있다. 그것은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그 중에서도 소설을 읽는 재미가 더욱 그러하다. 소설을 읽는 재미 중의 하나가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바로 자신의 일상적인 현실생활을 벗어날 수 있다는데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소설 읽기의 재미는 휴가를 보내는 재미와 일면 닮았다.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에 매료되는 일은 인류의 시작부터 있어 왔으며 한 개인의 경우에도 그것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누구도 지어낸 이야기의 매력에 빠졌었던 어린 시절의 몽상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에 맛보았던 그 은밀한 즐거움에 대한 그리움을 누구라도 다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을 읽는 이 은밀한 즐거움은 바로 일상적인 현실생활에 의해 심각한 억압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그렇게 억압받고 있는 책을 읽고 싶은 욕구를 회복할 수 있는 때도 바로 일상적인 생활을 벗어날 수 있는 휴가기간일 것이다. 일상에서 벗어난 즐거움과 소설속 현실과 만나는 즐거움이 합해지면 재미는 배가 될 것이다. 소설의 다양한 종류 덕으로 독자들은 자신의 취미와 감각에 맞는 작품을 골라 읽을 수가 있다.
잊고 살았던 책 읽는 재미를, 책을 통해 세상을 읽는 재미를 되찾아 맛볼 수만 있다면 휴가는 더 없이 흥겨울 것이다.<김이소 소설가>김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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