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과 신의 정보사회를 꿈꾸며…바람직한 「정보화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정보화사회」란 말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영어로는 「Information Age」라고 하는데 유독 한국과 일본에서만 「정보」란 말에 「화」자를 붙여 정보화라고 한다. 그러기 때문에 「정보사회」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화」라는 말 때문에 민주화나 자유화의 경우처럼 먼 미래에나 도달할 수 있는 이상형의 사회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원래 정보란 말부터가 개화기때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식 조어로 프랑스 병서를 번역한 군사용어의 개념으로 쓰이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정보는 적정보고의 준말로 첩보의 뜻을 지니고 있어서 오늘날의 정보란 개념과는 오히려 정반대의 의미작용을 하고 있다. 이러한 습관 때문에 정보는 남이 알아서는 안되는 독점된 지식을 뜻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던 것이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말 가운데도 『정보가 샜다』거나 『정보를 흘린다』고 하여 정보를 가지고 있는 측에서는 그것을 물과 같은 것으로 보고 보안 기밀유지로서의 제보로 생각하고 있으며 반대로 정보를 구하는 측에서는 『정보를 캐온다』『정보를 파온다』고 하여 광물과 같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사회의 정보개념은 물과 같은 액체나 노다지같은 광석이 아니라 만인이 공유하고 숨쉬는 그리고 독점불가능의 공기와 같은 것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러한 정보개념에서만 진정한 정보사회가 형성되고 거기에서 산업사회와 다른 인간의 행복이 실현되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정보사회에서도 산업사회와 마찬가지로 빈부가 있어 정보에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정보부자(사이버리치)와 정보가난뱅이(사이버푸어)가 있기 마련이다. 같은 컴퓨터라도 486기종이냐 펜티엄기종이냐, 그리고 컴퓨터통신에서도 사용하는 모뎀이 1만4,400bps냐 2만8,800bps냐로 빈부의 격차가 생겨나고 인터넷에 접속하는 데도 서울과 다른 지역의 전화선이 달라서 차이가 생겨난다. 그리고 인터넷의 ID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 특히 남성과 여성의 비율에서 미국의 경우 10대1로 여성이 약세에 있다는 것은 벌써부터 정보사회의 불균형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정보사회의 성격은 산업사회의 빈부와 달라서 사이버푸어가 있는 한 사이버리치는 자신의 부를 누릴 수가 없게 되어 있다. 밥은 옆에서 굶는 사람이 있어도 자기배가 부를 수 있지만 정보는 상대방이 정보기기가 없으면 내가 아무리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없는 것과 같은 상호연관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벌써 정보복지사회라는 말이 생겨나고 실제로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도시에서는 시내전화요금의 무료화를 추진하고 누구라도 공공기관에 가면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생겨나고 있다. 정보사회는 네트워크사회이므로 사이버푸어와 사이버리치의 계층이 해소되지 않으면 그 자체가 작용하지 않게 된다. 또한 정보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직접 대면보다는 전자우편과 같은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해서 만나게 되기 때문에 자연히 자기주장이나 감정의 억제가 불가능해진다. 그러기 때문에 상호에티켓도 이제는 네티켓(네트워크 에티켓)이라는 말로 바뀌어가고 있으며 그것을 위반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플레임(Flame)이라 하여 준엄한 여론의 심판을 받게 된다.
정보사회를 이끌어가는 인터넷가입자는 금년말에는 5,000만명 그리고 20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10억명 가까이 되리라고 추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거대한 가입자들이 만나는 네트워크에는 중앙관리나 통제소가 없는 무주공산이다. 「통제불능의 아나키」라고 불리는 인터넷에서는 개인이 전세계를 상대로 발신할 수 있게 됨으로써 공공기관과 개인간의 갭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정보사회의 개인은 마치 정부나 다른 사회단체와 마찬가지로 공공의식과 그 책임을 질 줄 아는 의식의 개혁이 필요하다.
현재 인터넷 속에는 사이버테러리즘이라고 불리는 각종 범죄와 폭력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에 대응하는 법이나 규제는 무방비상태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기존사회를 전제로 한 법규정 때문에 원격의료등 새로운 서비스가 가능해지면서도 통신업자가 의료행위를 했다고 범법자가 되는 난센스도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보사회에서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인간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에 정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직접 만나서 서로의 정을 나누고 확인하는 따뜻함이 네트워크의 모니터상에서는 느낄 수가 없게 된다는 점이다. 전화용도의 대부분이 메시지보다는 서로 만나자는 약속을 하기 위한 랑데부용이라는 조사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보사회일수록 디지털신호가 아니라 살아 있는 숨결을 지닌 인간적 만남의 기회를 늘려가야 한다. 즉 정보란 말 속에 숨어 있는 정과 통신이란 말 속에 곁들여 있는 믿을 신을 살려가려는 노력이다.<▲62세·충남 아산 ▲서울대 국문과 졸, 문학박사 ▲이화여대 국문학과 교수 ▲초대 문화부장관 ▲현 이화여대 석좌교수 ▲저서:「축소지향의 일본인」 「신한국인」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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