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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에 아내·딸묻고 눈물로지샌 365일/김현곤 현대양영학원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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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에 아내·딸묻고 눈물로지샌 365일/김현곤 현대양영학원이사장

입력
1996.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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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애틋한 모녀이기에 한날한시 같이 잠들다” 비문/무덤가에 꽃심어 놓고 매주 찾아/딸 친구들 내일 묘지 위령 연주회현대양영학원 이사장 김현곤씨(55·서울 서초구 방배동)는 지난 1년간 매주 한차례 한번도 거르지 않고 새벽 일찍 집을 나섰다. 그가 말없이 가는 곳은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로 숨진 아내와 딸이 묻힌 경기 포천의 가족묘지.

눈물로 심은 봉숭아 채송화 등 아내와 딸이 좋아한 꽃은 무덤가에 화사하게 피어났다. 아내와 딸이 금방이라도 웃으며 달려와 안길 것만 같다.

지난해 6월29일 하오 5시50분께 아내 백은현씨(당시 51세)와 딸 주은양(당시 21세·연세대 노어노문학 3)은 손을 잡고 삼풍백화점에 갔다. 다음날 러시아 모스크바대로 유학을 떠날 예정이던 주은이가 가져갈 밑반찬을 사기 위해서였다. 모녀가 백화점 안으로 들어간 지 7분이 지난 뒤 건물은 한순간에 무너져내렸다. 정신나간 모습으로 참사 현장을 헤맨 지 9일째. 사랑하는 아내와 딸은 서로 부둥켜안은 싸늘한 시신으로 3층 매장에서 발굴됐다.

아내와 외동딸을 잃은 김씨의 충격은 컸다. 독실한 신앙인으로 잘 마시지 않던 술을 입에 대게 됐고 운영하던 학원에도 6개월동안 발을 끊고 칩거했다. 절망과 슬픔, 분노의 나날이었다. 당시 고3이던 아들 상택군(19)은 전교에서 수위를 유지했으나 역시 심리적 충격을 받은 탓에 서울대에 지원했으나 실패했다.

김씨가 예전의 규칙적인 생활로 돌아온 것은 2월. 재수를 하면서 힘들어하는 아들을 보면서 김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아 있는 가족을 위해서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는 다음달에는 14년 동안 살아온 정든 집에서 이사할 생각이다. 아내와 딸이 금시라도 대문을 열고 돌아올 것만 같고 집안 곳곳에 서려 있는 추억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유난히 사교적이고 통솔력이 뛰어났던 주은이는 중고교 시절 학생회장을 도맡아 하고 연세대 재학 당시에는 유포니아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단에서 활동한 팔방미인. 오케스트라단 친구들은 29일 묘지를 찾아 그가 좋아한 음악을 연주하며 주은이의 외로움을 달랠 계획이라고 한다.

참사 1주기를 기해 아름다운 현악음률이 울려 퍼질 묘지의 상석에는 「너무나 애틋한 모녀이기에 같은 날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서로 손잡고 잠들다」라고 쓰여 있다. 김씨가 애끊는 마음으로 직접 쓴 비문이다.<김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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