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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마지막 7년(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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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마지막 7년(장명수 칼럼)

입력
1996.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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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한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 누군가의 부음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그의 생을 돌아보며 슬픔에 젖지만, 그날의 아픔은 특별했다. 밝게 웃는 고인의 사진앞에 국화 한송이를 놓을 때 나는 그의 마지막 7년을 생각하며 가슴이 메었다.성악을 전공한 그는 맑고 둥근 소리로 상냥하게 말했고, 잘 웃었고, 거세지 않은 따뜻한 여자였다. 그의 남편과 나는 삼십여년전 신문사의 입사동기였으므로 연애하고 결혼하던 그들의 아름다운 시절을 잘 알고 있었다. 결혼후 몇년동안 아기를 기다렸던 그는 1남2녀의 행복한 엄마가 되었다.

그의 행복은 47살의 어느날 갑자기 깨졌다. 89년 3월 운동하다 다친 발목의 인대를 수술하러 입원했던 그는 마취도중에 식물인간이 됐다. 마취상태에서 그의 혈압은 0으로 떨어졌고, 곧이어 심장이 멎었으며, 이십여분후 심장을 소생시켰을때 그의 뇌세포는 이미 파괴된 상태였다. 마취담당 의사는 자리를 떴고, 병실을 지키던 1년차 레지던트는 노트정리를 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다른 의사가 환자의 혈압이상을 발견할 때까지 그들 두 의사는 모르고 있었다.

그 여자는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그의 가족은 애통함을 이기지 못해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에서 마취담당 의사들은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2심·3심에서는 무죄판결이 나왔다. 환자의 체질이 특이하여 마취에 대해 이례적인 반응을 보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병원측의 주장을 법원은 받아들였다.

엄마가 입원할때 14살 16살 18살이던 자녀들은 엄마가 세상을 떠나던 날 21살 23살 25살의 젊은이로 문상객들을 맞고 있었다. 의식이 없는 엄마를 문병하며 사춘기를 보냈던 그 아이들의 7년, 아내없이 아이들을 키웠던 남편의 7년은 참담했다. 아이들과 남편을 차마 떠나지 못했던 그 여자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야윈 몸으로 다 탄 촛불이 꺼지듯 눈을 감았다.

하느님만이 진실을 아실 것이다. 마취의사들이 환자를 제대로 지켰다면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가족들은 항변하고, 병원측은 환자의 특이체질이 사고의 원인이었다고 주장했다. 의사들은 법정에서 이겼다. 그러나 그들은 도의적으로도 당당할까.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다른 모든 의사들도 그들 편을 들어줄까.

행복했던 40대의 모습으로 사진속에서 밝게 웃고 있는 그 부인은 비극적인 마지막 7년의 의미를 우리에게, 의사들에게, 첨단의료장비와 의술을 자랑하는 병원에 묻고 있다. 의사들은 그의 물음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모든 의료사고 희생자들의 얼굴을 마음 깊이 새기고 직업에 임해야 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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