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시민들은 오늘부터 부곡동 큰길가 넓은 터에서 머리 희끗한 50대 후반의 여자가 파는 시원한 콜라를 사먹을 수 있을 것이다. 전통 벽돌과 기와의 명인 김영림씨가 두 친구와 함께 콜라장사를 시작한다.한국토형미술연구소 대표인 김영림씨가 거리에 나선 것은 지난 3월 어음 4억원을 막지 못한 까닭이다. 그의 벽돌과 기와를 가져간 사람이 준 어음이 휴지로 변했기 때문이다. 은행의 자금지원도 끊겼다. 당장 공장은 가동해야 했고, 가동하려면 연료가 필요했다. 연료값을 대려면 얼마라도 돈을 벌어야 했다.
우리 전통 벽돌은 천년이 지나도 원형 그대로 선명한 무늬가 아름답다. 그래서 안압지에 깔린 신라인의 보상화 무늬 벽돌은 전통문화에 자부심을 갖도록 해준다. 이 제조 기술은 조선 말기까지 이어져 궁궐 건축에 쓰였으나 일제 강점기와 광복 직후 혼란기에 끊어졌다.
김영림씨는 창덕궁 대조전을 지을 때 일했던 도편수 조원제 옹에게 전통벽돌과 기와를 만드는 비법을 듣고 정성을 다해 재현에 성공했다.
지금 뛰어난 예술성으로 평가되는 건물들에 한국토형의 벽돌이 들어가 있다. 백상기념관, 공간사옥,워커힐호텔, 공주박물관, 무령왕릉 현실 등이다. 최근 유명해진 진천 보탑사의 아름다운 목조건축에도 그의 벽돌과 기와를 썼다.
일본에서도 이 벽돌은 잘 알려져 있다. 도예가 심수관씨의 박물관 바닥과 약사사 삼장원의 회랑에도 깔려있고, 90년 오사카 꽃박람회 때 조선의 화초담을 쌓아 금메달을 수상했다.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재 복원공사에 벽돌제작자로 참여해 스리랑카의 초대형 전돌탑의 제작도 맡고 있다. 앞으로 김영림씨의 벽돌과 기와는 할 일이 많다. 국적도 불명하고 예술성도 부족한 우리 건축에 전통미의 아름다움을 불어넣는 일을 해야 한다.
안산에서 신갈가는 산업도로를 지나는 운전자들은 터가 널찍한 부곡동 외진 가게에 들러 시원한 음료 한잔을 들고 가시길 바란다. 그러면 『문화인 보다는 복부인이 오는 것이 더 좋다』는 은행을 대신해서 문화상품을 수출하는 우리의 중소기업을 살리고, 동시에 전통 문화를 살리는 데 기여하게 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