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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보호의 문화/최종고(한국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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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보호의 문화/최종고(한국 논단)

입력
1996.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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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간의 독일체류를 마치고 귀국채비를 서두르면서 다소 착잡한 감정을 느낀다. 분단국가에서 통일독일을 연구하러 온 학자로서 무엇을 배워가는가. 한국은 독일처럼 준비없는 통일은 하지 말라는 선의의 배부른 투정같은 충고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이 문제는 돌아가서 두고두고 생각해야 할 과제이고, 우선 귀국한다니 이 곳이 아무리 좋아도 내 조국은 아니기에 가족과 직장이 기다리는 고국으로 빨리 돌아가 다시 힘차게 일하고 싶다는 설렘이 앞선다. 그러나 솔직히 이것에 못지않게 엄습하는 감정은 다시 산소부족의 갑갑한 어항 속으로 들어가는 금붕어같은 심정이다. 서울의 교통지옥, 공해지옥으로 들어가려니 벌써 가슴이 답답해진다.이 곳에 사는 동안 깊이 새로 눈뜬 것이 있다면 문명의 척도는 이제 더 이상 산업화가 아니라 자연보호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인류는 자연환경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기까지 긴 역정과 대가를 지불하였고, 이제 자연을 스스로 보호하지 않으면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박하게 깨닫게 되었다.

최근 연이어 주변에서 자연보호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통일독일의 신선한 면모같이 느껴졌다. 슈투트가르트에서는 「자동차없는 삶의 질」을 위한 캠페인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었다. 인간은 자동차 없이도 어느 정도 기동력을 발휘할 수 있고 더욱 쾌적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고 자동차 안갖기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곳에서 보는 것은 과거보다 자전거가 훨씬 더많이 늘어 대학캠퍼스에도 학생과 교수들의 자전거가 즐비하고, 주말이면 가족들이 자전거를 타고 야외로 하이킹 나가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아비규환의 교통사고로 전시를 방불케 하는 서울처럼 자전거가 다닐 수 없는 도시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또 어제는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환경법연구센터가 개원하여 환경보호를 법적·제도적으로 더욱 깊이있게 연구하겠다고 다짐하는 학자들의 모습을 보았다. 물론 법만 아니라 환경경제학, 환경철학, 환경공학등 학제적 연구를 전개하겠다고 표명하고 있었다. 한국인의 눈으로는 산자수명의 슈바르츠발트지방에 무슨 환경파괴가 그리 심각한가 이해가 잘 안되는 면도 있었지만 학자들이 이처럼 진지하게 대처하는 선진적 모습을 보면서 크게 감명받았다. 개원식에 초대되어 필자는 최근 한국에 다녀온 한 교포의 말이 떠올라 속으로 쓴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한국에 가니 도시공해는 말할 필요도 없고 농촌도 가축사육으로 도랑물이 모두 오염되고 사람이 가축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가축이 되어 찌들어 살고 있더라는 것이다. 좁은 땅 안에 많은 인구가 살자니 오염도 불가피하다 하겠지만 그러기에 환경대책이 중요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 환경공해의 주범인 교통혼잡과 대기오염만 보더라도 정부의 대책포기가 아닌가 여겨질 정도로 미미하고 답답하다. 좁은 도시공간에서 한 집에 차를 몇 대씩 가지고 있어도 세금으로 적절히 규제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그것은 자본주의와도 아무 관계없고 빗나간 이기주의와 교통정책의 포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교통체증으로 인한 국민경제적 손실은 천문학적 숫자에 이르며 전국민의 인간다운 생존을 위한 기본권이 침해되는 헌법소원의 대상이다.

통일후 독일이 어떻게 변하였느냐고 묻는다면 물론 통일비용의 부담으로 세금을 더 냈다든지 사업자가 증가했다든지 하는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필자가 인상적으로 발견한 것이 있다면 이제 「정치」에서 벗어나 자연과 환경의 고마움과 아름다움 속에서 진정으로 인간다운 생존을 새롭게 시작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아직도 대립과 소모정치의 늪에서 신음하고 있는 우리의 눈에 부럽기 그지없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새 한마리가 모두 인간과 함께 생존을 향유할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진정한 통일의 목적지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유발케 하기도 한다.

이것은 인간의 삶의 방식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우리의 통일도 이런 측면에서 질을 가다듬어야 통일국가의 비전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절대로 미국처럼 대규모의 자가용 중심의 교통체계가 되어서는 아니되고 좁은 국토에 대중교통수단을 치밀하게 구사하면 독일처럼 좋은 교통환경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동안 재벌자동차회사들의 로비 때문에 국민을 위한 교통정책이 궤도이탈을 하였다면 이제 과감히 바로잡을 때다. 정부는 이것이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개혁정책이고 세계화정책임을 다시 한 번 명심하기 바란다.

독일과 한국, 유럽의 심장과 극동의 심장인 두 나라를 왕래하는 한국인의 심정이 이렇게 착잡하게 느껴지지 않을 날이 언제 올는지? 독일에서의 마지막 붓을 놓는다.-프라이부르크에서 <서울대교수·법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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