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고 뺨맞는다」는 우리 속담은 곧 배신을 의미한다. 작년 여름 남한정부가 식량난으로 허덕이는 북한주민들을 돕기 위해 무상으로 지원해 준 15만톤의 쌀 대부분이 군용으로 쓰여졌다는 김영삼대통령의 말은 이 속담을 연상시킨다. 우려했던 일이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동포애와 인도주의를 헌신짝처럼 짓밟은 북한의 행태에 깊은 배신감과 함께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막대한 양의 쌀을 결국 호구에다 던져준 격이 된 데는 우리 정부의 실책도 있다. 먼저 쌀지원교섭 방법을 변칙적으로 한 점이다. 대북담당부처인 통일원을 제친 채 재경원차관을 대표로 한 것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다음 수송과 주민배급에 이르기까지 우리 측이 참여 내지 직·간접확인하는 일련의 투명한 장치를 전혀 마련하지 않은 것도 그렇고 당시 우려됐던 군용화하지 않겠다는 문서보장을 받지 않은 것도 실수였다. 정부는 가장 중요한 이들 장치들을 묵과한 채 정상회담 논의 가능성과 비방중지 등 지나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기대했던 정상회담 논의는커녕 남한정부 배제를 고수하고 대남비방을 계속했으며 심지어 쌀 수송선에 인공기강제게양과 선원억류 등을 자행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15만톤이란 엄청난 쌀을 받아 몰래 군량미로 썼으면서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용도에 대한 문서는 물론 일언반구의 해명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북한체제의 참모습인 것이다.
결국 정부는 시행착오에 의한 쌀 15만톤 지원으로 값비싼 교훈을 또다시 얻은 셈이다. 앞으로 이 교훈을 국내외의 대북지원에 철저하게 활용해야 한다. 우선 정부차원의 쌀 지원은 북한이 4자회담의 수락과 함께 남북대화재개 및 쌀 지원요청이 있어야 하고 지원은 반드시 굶주리는 주민들에게 직접 분배를 확인하는 장치가 곁들일 때 이뤄져야 한다.
아울러 유엔은 물론 대통령선거 및 국내 정치적 필요에 의해 북한끌어안기와 대북접근정책에 따라 식량지원을 늘리려는 미일등 국제사회에 대해 북한의 쌀 군용화사실을 널리 알리고 인도적 지원과 함께 반드시 주민에게 식량등 구호품이 전달되는 것을 확인할 것을 촉구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김정일체제로 하여금 남한이나 국제사회를 한번 속일 수는 있어도 두번 세번 속일 수는 없다는 것을 알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 북한이 남한과 국제사회로부터 계속 쌀지원을 받고자 한다면 우선 군용으로 빼돌린 쌀을 주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이어 솔직하게 한·미·일 등에 식량부족실태와 배급상황을 공개·확인시킨다는 개방적 자세로 나올 때 쌀 추가지원도 받게 되고 체제도 유지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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