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제 특파원 현지서 제1신/1국2체제 초유정치실험 장래 촉각/경제발전 “도움” “역행” 예측엇갈려24일 하오 홍콩섬 퉁로만 인근 소고 백화점 일대 쇼핑가. 하루종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이 곳은 발디딜 틈이 없을 만큼 북적거렸다. 주말을 즐기러 나온 홍콩 주민들 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몰려 온 쇼핑객들로 가득찼기 때문이다. 1841년 영국군이 처음 발을 디딘 홍콩 섬의 해변(현재의 할리우드 공원:하리활도공원)에서 동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 쇼핑가는 당시에는 중국 변방의 가난에 찌든 어촌의 일부였다.
척박한 돌 섬으로 해적의 은신처가 되기도 했던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이후 150여년이 지난 지금 아시아 제일의 무역·금융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쇼핑 천국으로 변모했다.
97년 7월 1일 0시. 홍콩은 영국 식민지로서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중국, 즉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주권이 이양돼 특별행정구(SAR)로서 중국 영토에 편입된다. 이 시각 이후 홍콩은 「1국 2체제」라는 유례가 없는 실험 대상으로 새로운 역사를 펼쳐나가게 된다.
『앞으로 50년 동안 현체제와 생활방식을 유지한다』는 중국의 약속이 있었지만 전인미답의 길을 나서야 하는 630여만명에 이르는 홍콩주민들의 마음은 착잡하고 복잡하다. 홍콩 침례대학이 2월 실시한 「홍콩인 여론조사」는 이같은 홍콩주민들의 심정을 잘 보여준다. 「중국 복귀」(46%)와 독립·영연방 가입 등 「반중국」(44%)으로 거의 양분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도 홍콩특구의 통치를 통해 99년 마카오주권 이양, 나아가 대만과의 통일을 위한 좋은 선례를 남겨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홍콩대학 정치학과 제임스 탕 교수는 『중국은 홍콩특구 통치를 통해 「1국 2체제」라는 통일노선을 검증받게 될 것이며 그 성공여부는 중국의 팽창을 예의 주시하는 다른 나라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은 또 대륙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될 자본을 융통하고 그 자본을 바탕으로 생산한 상품들을 내다 팔 대외 창구로서 홍콩의 역할이 더욱 필요한 실정이다.
이에따라 홍콩특구는 당분간 성장궤도를 질주할 것이라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홍콩무역발전국 시장 개척매니저 양문영씨(여)는 『중국은 결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지 않을 것』이라며 『아태지역의 경제 급성장은 홍콩의 위상을 더욱 높여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홍콩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불안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중국의 정치상황,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중국과 대만 관계가 홍콩 전도의 불안요소다.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의 수석편집인 프랭크 칭씨는 「언론의 자유」를 예를 들어 설명했다. 그는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 판공실 주임 노평은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홍콩 언론이 독립과 두개의 중국 문제 등 4가지 사안에 대해 주장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했다』면서 『중국은 앞으로 티베트 독립움직임 등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제약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결국 자유로운 정보 확보라는 홍콩의 장점중 하나를 잃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홍콩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인 대부분은 홍콩의 미래를 낙관했다. 홍콩한인상공회 성석주부회장은 『홍콩 거주 한국인 기업가들 대부분은 홍콩을 거점으로 해 중국시장을 겨냥하고 있다』면서 『중국시장이 확대되고 성장하는 만큼 홍콩 반환후 중국과의 거래가 더욱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21세기를 목전에 둔 현재 「동방의 진주」 홍콩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새로운 항해길을 나서게 된 것이다.<홍콩=조희제 기자>홍콩=조희제>
◎홍콩 특구 주비위원 황의홍씨 회견/“현입법의회 대표성인정 곤란 외국은 지점 증가세 장래 낙관”
홍콩 입법원의원 겸 홍콩특별행정구(SAR) 주비위원회 위원 황의홍씨 (58·필립 웡)는 97년 반환 이후 홍콩의 장래를 낙관했다. 친중국계 인사인 그는 홍콩 아주금융집단 유한공사 등 7개 금융·제조 업체의 이사·상무이사를 맡고 있는 전문 경영인으로 홍콩 경제인 모임인 중화총상회 부회장과 무역발전국 이사, 홍콩 신공항관리국 위원으로도 일하고 있다.
―홍콩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홍콩의 미래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홍콩경제의 성장 여부이다. 최근 중국시장을 겨냥한 외국은행의 홍콩지점 개설이 늘고 있다. 지점을 설치할 때 정치안정 여부를 최우선시하는 외국은행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홍콩경제의 장래가 밝음을 뜻한다』
―95년 7월 선출된 입법의원의 임기보장 문제로 논란이 여전한데.
『크리스 패튼 총독이 중·영간 합의를 무시하고 92년 독자적으로 선거법을 개정해 선거를 실시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현입법의원중 일부는 중·영합의중 핵심사항인 「대표성」에 하자가 있다. 또 이중 국적자가 20%를 넘을 수 없다는 합의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런 문제점에서 현입법의회는 인정받기 어렵다』
―패튼총독에 대한 불신감이 깊은 것 같은데.
『그는 기본법을 성경보다 많이 읽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스스로 기본법의 정신을 무시하고 있다』
―앞으로 구성될 임시 입법의회를 두고 민주인사들의 반발이 심한 것으로 들었다.
『홍콩 재계인사는 물론 외국기업인들도 임시 입법원 구성을 지지하고 있다. 단지 반중국 인사들만이 반대하고 있을 뿐이다. 이 문제에는 홍콩정청도 관여할 수 없다』
― 주민들이 불안해 하고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불안감에는 이해가 간다. 이민이 증가한 것도 사실이지만 최근에는 사업을 위해 되돌아 온 사람도 많아졌다. 이민문제를 부각하는 것은 자칫 정치적인 고려에서 비롯한 것일 수 있다. 인구 대비로는 싱가포르의 이민자 비율이 홍콩보다 훨씬 높은데도 문제삼지 않으면서 홍콩이민 문제만 거론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80년대 말에 떠난 사람들은 이후 부동산 값이 4배로 뛰어 올라 돌아오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처지이다』<홍콩=조희제 기자>홍콩=조희제>
◎홍콩의 역사
▲1841=영국, 아편전쟁기간중 홍콩섬 점령
▲1842=아편전쟁 종결후 중국의 청조와 영국간 체결된 남경(난징)조약에 따라 홍콩섬 영국에 영구할양됨
▲1860=2차 아편전쟁. 중, 구룡반도와 스톤 캐터즈섬 영에 할양
▲1898.7.9=영, 의화단사건 후 체결된 북경(베이징)조약에 따라 신계를 99년간 조차
▲1941.12∼1945.8=일본점령
▲1949∼1950=중국 공산화이후 난민 약 75만명 홍콩이주
▲1950년대 =중, 홍콩 할양조약 불평등 주장 제기
▲1982.7=중, 97년 이후 홍콩주권회복선언
▲1982.9=마거릿 대처 영총리 방중, 등소평과 홍콩문제에 관해 회담
▲1982.10=중·영 홍콩반환에 관한 1차회담
▲1984.4=중·영 홍콩반환에 관한 13차회담
▲1984.12.19=중·영 홍콩반환협정조인
▲1990.4=중국 전인대 홍콩기본법 비준. 홍콩 첫 정당 설립
▲1991.6=영, 인권법 통과
▲1992.10=크리스 패튼 총독, 입법원 직선의원 확대 등 정치개혁안 발표
▲1994.8=중, 97년 주권 반환 후 입법원 대체 구상 공개
▲1995.9= 홍콩 최초의 민주직선 입법의원 선거서 반중국 민주당 압승
▲1996.1.26= 중, 홍콩특별행정구 주비위 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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