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쌀 먹어 봤으나 맛없어 공급 중단/김정일호칭 「인민공화국 원수」로 격상/94년 김일성 사망 당시 긴급 의료헬기 추락『북한은 지금 온통 전쟁준비에 혈안이 돼 있는데도 남한의 안보의식은 너무 희박한 것 같아 불안합니다』
지난달 23일 북한 미그19기를 몰고 귀순해온 이철수대위(30)는 24일 국방부 기자실에서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자신의 서울생활 한달 소감을 이렇게 요약했다.
그는 북한이 현재 극심한 식량난과 경제난때문에 반체제세력과 탈북자들이 늘고 있지만 군과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전쟁이라도 한번 치르는게 낫겠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팽배해져 가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자신이 몰고온 미그19기가 낡았다고 해서 북한 공군이나 군사력을 결코 얕봐서는 안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남지형 속속들이 알아
이대위에 따르면 북한의 각 공군부대와 조종사들에게는 남한의 주요 군사·산업시설에 대한 각각의 폭격임무가 할당돼있고 이들은 자신이 맡은 시설의 지형지물이나 대공포 위치까지 상세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 이대위 자신이 속했던 편대의 임무는 백령도와 수원비행장을 폭격하는 것인데 탐지레이더와 대공포를 피해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공격하는것 까지 충분히 숙지돼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대위는 3월 정찰참모로부터 수원공군기지의 정찰위성 사진을 넘겨받아 공격방법을 연구한 바 있으며 귀순때 우리공군기의 유도를 받아 수원기지상공에 와보니 활주로와 격납고등 위치가 사진내용과 똑같았다고 말했다.
이대위는 북한이 매년 사용료를 주고 러시아 정찰위성이 찍은 각종 남한 관련 정보자료를 넘겨받아 남한내 주요 시설물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북한은 걸프전 당시 이라크군이 미군의 우세한 전자전능력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전쟁에 패했다고 보고 유사시 한미연합군의 전자전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고 전했다.
전자전 대응에 혈안
그는 이밖에도 공군조종사들의 실제 비행훈련이 1년에 10시간 정도밖에 안되지만 평소 시뮬레이터를 이용한 조종연습과 도상훈련을 수시로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부대내 강당·강의실은 물론 복도나 식당, 화장실벽에까지 서방진영 항공기 그림이 그려져있고 조종사들은 전투기 사격 조준장치를 항상 휴대하고 다니면서 조준연습을 하고 있다는 것. 이 조준기를 상관의 안면에 겨누는 행위를 해도 처벌은 커녕 칭찬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는 이같은 전쟁준비태세가 모두 김정일의 직접지시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으며 김정일은 『통일은 총대에 의한 무력통일만 가능하다. 인민군대는 평화회담에 기대를 갖지 말라』고 지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일은 또 지금까지 최광 이을설등과 같은 「조선인민군 원수」였으나 최근 자신의 호칭을 차별화,「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원수」로 격상했다는 것이다.
이대위는 최근 북한은 전 가정에 대해 매년 돼지 한마리씩을 의무적으로 군부대에 상납하도록 지시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돼지 사료비등을 감당하기 힘들어 대부분 매달 지급받는 식료품과 술, 담배등으로 사료비를 충당하고 있으며 일부 가정들은 아예 돼지를 직접 구입해 상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때문에 북한체제에 대한 일반 주민들의 혐오감이 증폭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전반적인 치안이나 국방태세는 제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대위는 또 지난해 있었던 우리측의 대북쌀지원에 대해 『남한 쌀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다』면서 『85년 남한 수재때 우리(북한)가 쌀과 수재물자를 제공한데 대한 보답이겠거니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군부대에 돼지상납
그는 이어 이같은 소식을 들은 얼마뒤 자신이 속한 평남 온천의 57비행연대에도 남한쌀이 배급돼 먹어보았다고 말해 북한에 제공한 쌀의 일부가 군량미로 전용됐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남한쌀로 만들었다는 밥이 찰기가 없고 맛이 없어 1주일만에 부대원들의 반대로 남한쌀 공급이 중단됐다고 말해 군부대에 제공된 쌀이 실제 우리쪽 쌀이었는지 여부를 의심케했다.
한편 이대위는 94년7월8일의 김일성사망 당시 상황에 대해 『평양서 의료진과 의료기기를 싣고 긴급 발진한 직수기(헬기)가 묘향산 김일성특각에 착륙하려다 추락했으며 김일성은 기차를 타고 주석궁으로 돌아와 30분쯤 뒤 사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홍윤오 기자>홍윤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