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6·25! 올해도 어김없이 바로 그 날이 찾아왔다. 「지금 여기서」 우리 민족은 다시 한 번 6·25를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식민통치, 분단, 그리고 전쟁의 비참을 견디면서 우리는 참으로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 식민통치는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한과 치욕을 가져다 주었고, 강요된 분단은 우리 민족의 혼을 멍들게 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민족을 상호불신의 기형아로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한국전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으로 분단된 나라는 더러 있었지만 베트남과 독일은 통일을 이루었으나 분단과 전쟁, 다시 분단의 고착화라는 악순환을 거듭해 온 나라가 바로 한국이며 그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해 온 민족이 바로 한민족이다. 분단과 전쟁이 개인과 집단간의 불신과 갈등을 심화시켰고 그래서 믿을 것은 혈족 뿐이라 가족단위의 엄청난 다이내미즘으로 부둥켜 안고 일하고 배워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분단과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에서 우리 민족은 생존의 의지와 지혜를 배웠다.그러나 이제 우리는 생존의 협곡을 넘어 생활의 공동체를 창출해야 한다. 분단과 전쟁 속에서는 개인의 생존이 지상목표였지만 생존만으로는 참다운 의미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우리 모두의 의식전환 없이는 각박한 생존에서 평화로운 생활로의 전환이 어렵다. 우리의 의식을 외화 경박 아집 보복 분열로부터 내실 사려 타협 관용 통합으로 전환하려면 우선 우리의 일상생활이 평화로워야 하고 그러려면 무엇보다 전쟁상황의 극복이 급선무다. 제2의 6·25는 그 규모가 크든 작든 민족의 종말임을 명심해야 한다. 전쟁의 폐허 속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그 악몽을 재현한단 말인가. 우리가 당면한 최우선순위의 과제는 우리의 노력으로 민족상잔의 전쟁을 막는 일이다. 이 경우 문제의 핵심은 북한의 전쟁의지와 능력을 어떻게 파악하고 대처하는가 하는 것이다.
우선 북한이 전면전을 시도할 것인가 하는 물음부터 제기해 보아야 한다. 북한은 전면전에 관한한 승산을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6·25만 해도 그렇다. 당시 북한지도부의 입장에서 전면남침을 감행한 것은 전면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치밀한 계산의 결과였다. 생각해 보라. 1949년 미군이 철수해 버렸고 미군정 이래 전국적으로 좌파세력이 조직되어 있었으며 거기다 남한정부의 무방비상태 하에서 북한이 혁명전쟁을 시도한 것은 당시로도 예견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소련의 안보리 불참, 유엔의 발빠른 대응등 예견하기 어려웠던 역사적 「의외성」으로 인해 결국 역사의 신이 북한의 승산에 무서운 경종을 내렸다. 「합리적」 계산에 의한 전면침략이 결과적으로 오산으로 끝났을 뿐이다. 그 후 북한은 수많은 간첩사건, 땅굴, 영해침범, 핵위협까지 자행해 왔는데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이 전면침략 이외의 수단들을 동시다발적으로 구사해 온 점이다. 이렇게 봤을 때 전면남침은 남한이 정치·군사적으로 북한의 승산을 유도할 만큼 취약하지 않으면 현실성이 적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에 의한 전쟁도발 가능성은 없단 말인가 하는 다음 물음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이 정치의 연속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명제는 레닌에 의해 예찬되었고 사회주의 혁명전쟁에서도 황금률로 되어 왔다. 실제로 현대전에서 스페인내란을 제외하면 내전에서 거의 다 좌파혁명군이 승리했다. 중국 쿠바 베트남등은 그 좋은 본보기다. 이렇게 봤을 때 북한은 작은 규모의 도발을 정치의 수단으로 적절히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 작은 규모의 도발도 남쪽이 현명하게 대응하지 못할 경우 그 규모가 확대될 수 있고, 예기치 못한 엄청난 전화에 휩싸일 수 있다. 전쟁사를 읽어보면 「어린아이장난」처럼 시작한 전투가 큰 전쟁이 된 경우가 적지 않다. 북한지도부가 경제난 극복에 실패하여 정치적 통제능력마저 상실함으로써 북한인민이 남한을 선택하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어떤 형태로든 군사적 도발을 시도할 것은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그때는 규모가 작든 크든간에 제2의 6·25, 동족상잔의 비극이 재연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동독이나 기타 동유럽과는 다른 북한의 특수성이다. 우리가 서독형 통일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요컨대 북한은 승산이 있을 경우나 절망적 파국의 경우 군사도발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내정치의 수준을 북한이 명백히 전쟁을 포기할 정도로 격을 올려야 하며 북한의 종말을 강요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탈냉전시대의 한미·한일관계를 더욱 중요시하는 것도,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는 것도 다 평화로운 남북관계의 조정을 위해서다.
오염된 공기의 피해를 경험함으로써만이 맑은 공기의 고마움을 알듯이 평화는 전쟁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투철한 인식을 통해서만이 얻을 수 있는 귀중한 가치다. 평화는 자유와 평등의 토양이다. 민주주의는 그 평화의 토양 위에 꽃피는 연약한 풀과도 같다.<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고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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