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아마추어 정신 회복 한국일보 앞장을우리는 소위 「세계화」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세계화는 시대의 화두이자 시대정신이 됐다. 이렇게 되기까지 그간 세계화에 대한 의제를 경쟁적으로 강조해 온 언론의 공로(?)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론은 세계화를 나름대로 규정하고 이를 모범적으로 실천해 왔다.
일부 신문은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한글도 제대로 못 깨우친 어린이들에게 인터넷을 보급하자는 운동까지 열성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각 신문사들은 이미 세계화한 수용자의 정보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지면을 대폭 늘렸고, 늘린 지면을 정보별로 섹션화 또는 구분화하면서 요일별 특집도 다양화했다. 그리고 각 섹션이나 특집은 으레 세계어로 포장했다.
이제 거의 모든 신문에서 영어는 세계어가 되어 한글보다 더 당당하게 섹션이나 특집을 안내한다. 이 글이 실리는 한국일보의 「소리」면도 비록 희미한 음영으로 처리했지만 「Opinion」면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세계화한 언론답게 얼마나 세련되어 보이는가?
지면에서 세계화에 가장 충실하고 있는 면이 스포츠면이다. 스포츠면은 일단 재미있다. 한국일보의 스포츠면은 특히 재미있다.
극적인 장면을 포착한 사진과 화려한 수사는 미적, 문학적 상상력까지 자극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삶의 갈등과 투쟁이 있고 인간승리의 영웅신화가 있다. 신문을 보노라면 정치는 파행으로 치닫고, 경제는 노사갈등으로 위기감이 감돌고, 사회는 여전히 불안하기만 하다. 그러나 스포츠면은 읽는 재미와 심리적인 위안감까지 준다.
문제는 이러한 재미와 위안이 또 다른 우려를 갖게 한다는 점이다. 갈수록 인간의 능력은 「몸값」으로 환산되고 결과적으로 시장규모가 큰 외래시장의 영웅신화가 스포츠계를 지배하고 있다. 시장 자본의 원리가 보편화하고 있다. 스포츠는 또 정치화하고 대외적으로는 국수주의적인 경향까지 보인다.
이런 현상과 맞물려 신문 스포츠면의 세계화는 갈수록 우리 것에 대한 주변화로 흐르고 있다. 한 예로 지난주 화요일자(18일)의 한국일보를 보자. 이 날 스포츠에 관한 두 면은 US오픈 골프대회 최종 라운드와 미 프로농구의 결승전 소식을 전했다.
32면은 「무명 스티브 존스 영웅탄생」이란 머리제목으로 시작하여 「오토바이사고의 중상을 딛고 부활한 오뚝이」의 신화와 유럽축구선수권 대회에 대한 소식으로 채웠다. 33면은 「시카고 농구 왕중왕 등극」이란 머리제목으로 시작하여 「신의 손」마이클 조던의 「위대한 부활」을 전했다. 국내 스포츠는 경기안내나 기록표 정도로 주변으로 밀려나거나 실종됐다.
우리나라 스포츠가 천대받기는 이날 뿐이 아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구태여 복잡한 분석틀을 들이댈 필요도 없다. 지난15일부터 21일까지 6일동안(일요일자는 휴간) 한국일보스포츠면에는 총 28장의 크고 작은 사진이 실렸다. 이 중에서 한국일보 기자가 찍은 국내 스포츠 사진은 7장에 불과하다. 여기에서도 특히 국내 아마추어 스포츠에 관한 것은 단 두 장 뿐이다.
이러한 경향을 비단 한국일보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주요 전국지들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동소이하다.
스포츠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언론의 보도량과 중계시간 또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지금 방송은 관람 또는 시청하는 것으로 스포츠 시장에 편입된 수용자를 대상으로 세계적인 취향을 강요하고 신문은 이를 공명해주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우리 수용자에게 특정 문화권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를 노출시키는 것은 이들에게 일시적인 재미는 줄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문화적인 패배감과 인종적인 열등감을 갖게 할 수도 있다.
건전한 신체와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아마추어리즘이 아쉽다. 상품으로서의 신문이 시장의 수요 즉 독자의 관심을 따를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물론 팔리지 않는 신문, 읽히지 않는 신문은 자원낭비에 불과하다. 그러나 바로 수용자의 관심을 유도하며 「세계화」한 스포츠의 의제를 설정해 온 책임이 상당부분 신문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애틀랜타 올림픽이 곧 열린다. 비록 상업주의와 정치적으로 오염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우리 언론의 주관심사가 될 것이다. 아마추어들의 제전을 계기로 한국일보가 건전한 우리나라의 체육문화 조성을 위한 바람직한 의제 설정자가 되기를 기대한다.<김영기 전남대교수·미미주리대 신문학박사>김영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