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도시아파트 직장은 고향인삼밭/결혼·자녀교육위해 도시 이사/최근 도농복합지역 신풍속도경기 이천시 창전동 대호3차 아파트에 사는 박호철씨(40). 그는 매일 상오 7시 출근길에 오른다. 아내 조상숙씨(34)와 아들 진우군(11·이천초교 5) 딸 선아양(6)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하는 그의 모습은 여느 직장인과 다름없다.
그러나 아파트단지앞 교차로에서 박씨의 승용차는 서울 방향으로 좌회전하는 대부분의 출근 차량들과는 반대로 방향을 잡는다. 15분 가량 달려 박씨가 도착한 곳은 이천시 신둔면 도암리. 박씨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다.
박씨가 매일 고향으로 출근하는 이유는 뭘까.
『자식들의 교육 문제 때문에 도시 지역 아파트로 이사했지만 제 직업은 변함없이 농부입니다』
친척이 지키는 고향집에서 작업복으로 갈아 입은 박씨는 1㎞남짓 떨어진 인삼밭으로 발길을 옮긴다. 지난해까지 논이었지만 올해 큰맘 먹고 2천4백평 모두를 인삼밭으로 만들었다. 박씨는 해가 뉘엿거리는 하오 7시 무렵까지 뙤약볕아래 일하고는 여느 직장인처럼 가족이 기다리는 아파트로 퇴근했다.
「농촌출근족」이다. 경기 이천과 여주 하남시 등 수도권 일대와 대전 광주 인근 지역 등 최근 수년 사이 급속한 도시화가 이뤄진 도농복합지역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다. 이들은 밤에는 도시지역 아파트에서 가족과 편리한 도시생활을 즐기지만 낮에는 승용차나 화물차를 손수 몰아 고향으로 출근, 농사를 짓는다. 박씨 아파트에만 해도 그말고도 7명이 매일 이천읍을 오가며 농사를 짓는다.
「농촌출근족」이 되는 것은 대개 세가지 이유에서다. 박씨처럼 자녀교육 때문이거나 『시골에서는 죽어도 살기 싫다』는 도시 처녀와 결혼하기 위해, 또는 농촌거주를 더이상 견디지 못하는 가족들 때문에 고향집을 떠난다.
박씨가 도시지역으로 이주를 「결행」한 것은 3년전. 85년 이천읍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아내 조씨와 3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했지만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늘 안타까웠다.
『처녀시절 고왔던 아내의 손이 농사일에 나뭇등걸처럼 거칠어졌습니다. 게다가 아이들이 피아노학원이나 미술학원 등에 다니는 도시 아이들에게 뒤처진다고 생각하니 불안했습니다』
오늘도 아스팔트길을 자동차로 달려 황토흙을 일구며 하루를 보내고 아파트로 귀가하는 박씨. 일터이자 뿌리인 정든 고향 땅과 사랑하는 가족, 그 어느 쪽도 버릴 수 없는 고민 많은 이 시대 농부의 자화상이다.<이천=조철환 기자>이천=조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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