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와 마찰속 “4개 상임국 지지·여론” 내세워/로빈슨·오가타·브룬틀란트·아난도 도전장차기 유엔사무총장 선출을 둘러싼 세계 외교계의 각축이 본격화했다. 올해 말로 5년 임기가 끝나는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73) 유엔 사무총장이 19일 연임의사를 밝힌 지 수시간도 못돼 미국이 연임반대 입장을 공식 표명, 「세계 외교계의 수장」자리를 둘러싼 뜨거운 선거전을 예고했다.
지난 몇개월동안 세계 각국을 돌며 연임 가능성을 타진해온 부트로스 갈리 총장은 이날 자리를 계속 지키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미국의 반대를 꺾고 연임을 이룰 수 있을 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유엔 사무총장은 안전보장이사회의 추천을 받은 뒤 185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총회에서 다수결로 선출되는데 안보리 상임이사국중 한 나라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총장직에 오를 수 없다.
미국은 부트로스 갈리가 21세기를 맞는 유엔의 개혁에 부적절한 인물이라는 이유를 들어 그의 연임에 반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의 강력한 외교정책 수행에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93년 소말리아에서 유엔평화유지군으로 참여한 미군 18명이 전사, 미국에서 유엔의 무능으로 자국 병사가 희생됐다는 비난여론이 들끓었을 때 부트로스 갈리는 미국이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며 미국을 공개비난했다. 이집트 외무장관 출신인 그는 또 지난해 프랑스와 영국이 주저한다며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진지에 대한 공습을 주장하는 미국의 발목을 잡았다.
이에 따라 특히 미공화당을 중심으로 「부트로스 갈리 죽이기」 여론이 형성됐고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빌 클린턴 미대통령으로서도 국내 여론을 의식, 교체 방침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의 뜻대로 부트로스 갈리가 유엔에서 밀려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소르본대에서 수학하고 영어보다는 프랑스어를 더 잘 구사하는 부트로스 갈리를 프랑스는 물론 미국을 제외한 4개 상임이사국이 모두 지지하고 있다. 또 아프리카등 제3세계권도 그의 연임을 바라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앞으로 6개월안에 국제여론을 뒤엎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트로스 갈리를 대체할 후보로 주목받고 있는 면면은 「여성 3걸 + 남성 1명」으로 압축할 수 있다.
아일랜드 최초의 여성대통령인 메리 로빈슨(52)은 지난주 미국을 방문, 최초의 여성 유엔 사무총장이 되기 위한 운동에 시동을 걸었다. 변호사 출신인 로빈슨 대통령은 동성애 합법화를 주장할 정도로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또 그로 브룬틀란트(57) 노르웨이 총리는 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간 평화협정 체결의 숨은 주역으로 국제 외교가의 주목을 받은 바 있는 여장부다. 나머지 한명의 여성 후보는 일본 출신의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오가타 사다코(서방정자)이다. 이처럼 여성후보들이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유엔평화유지활동 담당 사무차장인 가나 출신의 코피 아난(58)이 만만찮은 다크호스로 부각되고 있다.<윤순환 기자>윤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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