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탈환 3일전 “적군 집결” 섬멸계획/미관측장교 “역사생각” 포격명령 미뤄6·25에 얽힌 비화는 46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도 남아있다. 6·25때 참전한 한 미군장교의 수첩속에는 한국의 대표적 고궁 덕수궁이 미군의 포탄세례로 완전 파괴의 위기를 맞았다가 간신히 모면된 사실이 생생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국방군사연구소가 6월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20일 펴낸 「폭파위기의 덕수궁」이란 참전수기의 필자 제임스 해밀턴 딜씨(69·예비역중령)는 『덕수궁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흐뭇함과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며 아찔했던 순간을 회고했다.
딜씨는 6·25 당시 미포병부대의 관측장교로 인천상륙과 서울탈환작전에 참가, 서울에 진격했다. 서울탈환을 3일 앞둔 50년 9월25일 도심 요충지 곳곳에서 북한군으로부터 필사적인 저항을 받았다. 딜씨가 부대를 지휘하며 덕수궁 부근에서 적과 대치했을 때, 전방관측자로부터 북한군이 덕수궁안에 집결해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딜씨는 이미 상부로부터 적군 집결지에 대한 섬멸공격 명령을 하달받은 뒤였다. 따라서 그의 포격명령 한마디에 덕수궁은 포탄세례로 불바다가 될게 뻔했다.
그때 딜씨의 눈앞에는 고색창연한 덕수궁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는 명령을 어기고 포격을 미뤘다. 북한군이 덕수궁을 빠져나가기를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북한군은 덕수궁에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딜씨는 북한군이 덕수궁을 빠져 나가 을지로 입구에 이르렀을 때 집중포격을 가해 이들을 섬멸했다.
딜씨는 수기에서 『그때는 전투보다는 역사를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76년 중령으로 예편한 딜씨는 아칸소주 리틀록에서 건축설계소를 운영하며 독신으로 노후를 보내고 있다.<홍윤오 기자>홍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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