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소장 유물 로비 등 비리설 파다/검증절차 요식적·심의도 공개안해/이번 사건 정식보고서도 없이 졸속결정 더 충격가짜 별황자총통파문으로 문화재당국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어떻게 가짜를 국보로 지정할 수 있을까. 그러나 알고 보면 문화재 감정·지정과정에서 가짜가 국보로 둔갑될 수 있는 소지는 많다. 일단 지정된 문화재는 진위논란이 일거나 시비에 휘말려도 재검토·취소되는 사례도 거의 없다. 우리의 현실을 짚어보고 개선책을 찾는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주>편집자>
국방부·검찰 수사당국과 문화재관리국은 아직 국보 제274호 귀함별황자총통의 진위여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충무공해전유물발굴단의 「인양조작」건수가 속속 밝혀지면서 총통이 의도적으로 제작된 위조품일 개연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보도된대로 92년 당시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성분조사에서도 문제의 총통에서 다른 조선시대 청동무기류에는 없는 아연이 다량 검출된 점, 도피중인 골동품상 신휴철씨(64)의 집에서 가짜 총통 13점과 음각하는데 사용한 기구등이 발견된 점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파문이 이처럼 확산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과연 이것 뿐이겠느냐』는 데 모아지고 있다. 최근 위작시비에 휘말린 국보 제237호 고산구곡시화병이나 경기도립박물관의 가짜유물 반입사건등 그동안 문화재의 진위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상 고미술계에서는 『인맥이나 돈을 동원하면 문화재지정은 충분히 가능하다』 『국보도록에 올라 있는 것중 엉터리가 어디 한두 개인가』라는 식의 얘기들이 공공연히 떠돌고 있다.
96년 6월 현재 국보의 수는 모두 2백88건으로 관리주체는 국가소유가 1백36건, 자치단체가 2건, 민간소유가 1백50건으로 구분된다.
국가지정 문화재라도 개인소유면 충분히 매매가 가능하다. 더구나 국보의 상품가치는 「희귀성」이 절대적으로 인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지정 전과 지정 후가 하늘과 땅 차이다. 이때문에 개인소장자들은 소장유물을 문화재로 지정받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특히 좁은 고미술시장에서 개인소장자, 문화재위원들끼리 서로 안면이 있는 터라 구입하는 과정에서 자문하거나 문화재 지정가치의 여부까지 사전에 평가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 과정에서 금품수수나 비리의 소문이 수없이 새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문화재위원을 지낸 C씨는 90년초 문화재지정 심의과정에서 상인들과의 이권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 위원직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물론 당시 심의대상에 올랐던 골동품은 곧바로 지정신청이 취소됐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이권이 개입될 소지가 다분한데다 유물 자체에 대한 평가역시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하는 국보지정작업이 「비공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모든 문화재는 나라의 문화수준을 나타내는 상징인 만큼 지정과정에 반드시 학계 전문가들에 의한 엄정하고도 공개적인 검증절차가 있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비난이다. 고산구곡시화병(개인 소장)의 경우 87년 지정 당시에도 문화재위원회 내에서 진위논란이 있었지만 한 번도 토의내용이 공개되지 않고 국보로 지정됐다.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내용을 기록, 보관하는 「회의록」이 있지만 이 역시 형식적이다. 회의록은 토의과정에서 반대입장이 제기되더라도 이를 기록하지 않고 결과만 보고하는 형식이다.
국보지정과정은 크게 문화재전문위원 조사―소위원회 심의―분과전체회의 결정등 3단계로 나뉜다. 개인이나 발굴기관이 문화재관리국에 소장 유물을 문화재로 지정신청하면 문화재전문위원이 학술조사를 벌여 보고서를 작성한다. 보고서가 완성되면 문화재위원회의 해당 분과위원중 관련분야 위원 3∼4명이 임시 소위원회를 열어 심의를 한다. 소위원회 심의를 통과하면 월 1회 열리는 분과전체회의에 상정돼 지정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하지만 이런 절차조차 상황에 따라 들쭉날쭉이다. 대부분 학계에 몸담고 있는 위원들이 안건 하나하나에 매달릴 수도 없는 형편이어서 심의는 요식행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한 문화재위원은 『시간도 많지 않고 여러 안건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위원이 제출한 보고서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당시 1차조사를 담당한 이강칠(70)문화재전문위원은 정식 학술보고서도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19일 밝혀졌다. 이씨는 2백자 원고지 5장분량의 형식적인 감정서만 작성, 문화재위원회에 제출했으며 인양 당시에나 후에도 해사에 가본 적이 없었고 심의당일에야 총통을 본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재위원회는 문화재전문위원의 보고서조차 없이 발굴주체측의 발표내용만을 근거로 심의를 한 것이다. 이번 지정작업이 얼마나 졸속으로 이뤄졌으며 문화재당국의 국보지정체계가 얼마나 형식적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화재위원들의 전문성 부족과 대충대충식 의결관행도 문제점이다. 92년 귀함별황자총통의 국보지정 당시 감정에 참여했던 임창순 현문화재위원장, 황수영·진홍섭 전문화재위원장, 천혜봉 성균관대명예교수, 안휘준 서울대교수, 문명대 동국대교수등 문화재위원회 2분과소속 위원 가운데는 거북선 총통의 학술적 의미와 내용을 평가할 수 있는 임란사 및 과학사 전공자가 한 명도 없었다.
또 분과당 위원수는 7∼10명이지만 대개 최종결정은 해당분야 전문가 한두사람의 「입김」에 의해 내려지는 게 관례다. 한 문화재위원은 『심의과정에서 반대의견을 내더라도 원로교수나 해당분야 위원이 아니라고 하면 문제제기를 중단하는 일이 많다』고 실토했다. 다수가 심의에 참여하더라도 결국 전공자 한두명의 의견에 따르게 돼 있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국보지정의 필수조건인 「만장일치 의결」도 아무 의미가 없는 셈이다. 문화재관리국은 뒤늦게 논란이 되고 있는 모든 국가지정문화재에 대해 내년부터 전면재감정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잘못된 문화재행정 전반의 개선을 위해서도, 이번만은 미봉책으로 그쳐서는 안된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견해이다.<변형섭 기자>변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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