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문학 지향한 모더니스트/토속적 시각적 절제된 시어로/고향정경 수채화처럼 형상화어느덧 제2의 애국가처럼 돼버린 「향수」의 작가 정지용(1903∼50년)은 살아 생전 3개의 시집을 내놓았다. 첫번째가 1935년 나온 「정지용시집」, 두번째가 1941년 출간된 「백록담」, 마지막 시집이 1946년의 「지용시선」이다. 이들 세 시집을 모아놓은 「정지용전집」을 읽고 있노라면 태어나 자란 내 땅에 대한 서정이 마치 민요처럼, 또한 아름다운 한폭의 수채화처럼 떠오른다.
정지용의 시가 이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그가 토속적 리듬을 강조하는 순수시인이기 때문이다. 우선 그의 시는 마치 민요같은 느낌이다. 이런 점에서 정지용의 시는 소월의 「산유화」 「진달래꽃」, 목월의 「나그네」와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우리 것에 대한 동경을 적절하게 어루만져 준다.
또 한편으로 그는 카프파에 반대하고 문학의 예술성을 강조한 순수문학운동에 동조했다. 그는 시 자체에서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언어의 조탁에 힘썼다. 이런 점에서 그는 김영랑과 맞닿아있다. 다만 김영랑이 시의 음악성을 높이기 위해 언어를 조탁했다면 그는 회화적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 말을 다듬었다.
민요풍의 리듬과 순수시에 대한 추구 이외에 그의 시를 규정했던 또 하나의 요소가 모더니즘이다. 그는 절제된 감정으로 고도의 선택된 언어를 사용해 사물과 사건에 대한 이미지를 중점적으로 그려 나가는 모더니즘류의 시작에 열중했다.
민요시인 겸 순수시인이고 또한 모더니스트였던 정지용의 풍모가 가장 잘 드러나는 시가 그의 데뷰작 「향수」(1927년「조선지광」)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모두 10연으로 이뤄진 이 시는 일본 유학 당시 정지용이 조국과 고향에 대한 느낌을 표현한 것이다. 서울로 유학오기 전 17세까지 지냈던 고향마을에 대한 그리움을 특유의 토속적인 시어를 활용해 적절하게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해 내고 있다.
또 하나의 대표작 「고향」에서 정지용은 그토록 가보고팠던 고향마을에 돌아갔으나 이제 너무도 달라져 버려 더이상 옛 향수를 느낄 수 없게 된 애틋함을 표현하고 있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산꿩이 알을 품고 뻐꾹이 제철에 울건만/마음은 제 향 지니지 않고/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전란의 와중에 북한으로 가서 미군 폭격에 숨지는 그 순간에도 그의 뇌리에는 어릴적 고향마을이 스쳐 지나가지 않았을까.<이은호 기자>이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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