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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불에 걸맞은 교육/이종구 사회1부장(데스크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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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불에 걸맞은 교육/이종구 사회1부장(데스크 진단)

입력
1996.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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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교육제도를 개혁하니까 과외가 줄었다?」 「사교육비 지출이 줄어 학부모들의 주머니 사정이 좋아졌다?」 천만의 말씀이다. 학부모들이 느끼는 사교육비 체감지수는 높으면 높아졌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의 말을 빌리자면 『물가가 오르는데 따라 과외비도 올라가더라』이다.세상에 우리처럼 자식 교육시키는데 많은 돈을 들이는 나라는 없다. 교육에 소모되는 국가 에너지는 엄청나다. 대학입시 때면 온 나라가 몸살을 앓는다. 고3생을 둔 학부모는 1년 내내 집안에서 큰소리 한번 치지 못한다. 「다정한 부부생활」도 금물이다. 이렇게 온정성을 기울여 교육을 시키고 있으니 우리 자녀들은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돼야 할 터이다. 그런데 이것도 천만의 말씀이다. 뒤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가장 똑똑한 것은 아니다. 창의력은 뒤진다. 우리는 쓸데없이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해가며 자녀들에게 헛교육을 시키고 있는 셈이다.

교육열이 지나쳐서 학교안에 돈봉투까지 들고 가는게 우리들이다. 들어내놓고 말들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이웃끼리는 다 알고 있다. 따지고 보면 돈봉투 관행은 요령주의의 산물이다. 장삿속이다. 스승을 존경해서가 아니라 내자식에게만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불공정거래의 약조나 다름없다. 내신제도이후 더욱 성해졌다고도 한다.

과거 소팔고 논팔아 대는 식의 교육열은 어느 정도 국가발전의 순기능적 역할을 해왔다. 짧은 기간 경제기적을 일궈내는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지 못한다. 허블망원경을 우주에 띄워 목성을 탐색하고, 「쥬라기 공원」 영화 한편으로 수백억달러를 벌어들이며, 윈도 95 프로그램 개발로 PC 소프트웨어 시장을 석권하는 시대, 이런 시대에 오로지 대학입시 기술만을 향상시키는 과외가 무슨 소용있을까.

과학기술의 상품화에는 조금 앞서있을지 모르나 창의력이 필요한 과학기술 개발능력은 세계에서 중간치도 못갈만큼 뒤처져 있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능력은 인도 대만만도 못하다. 우주 항공분야는 중국 인도네시아에도 못미친다.

지금까지 잘못된 교육제도를 치유하기 위한 처방은 한 곳에 집중돼 왔다. 대학입시 제도를 바꾸는 일이었다. 「학력고사」 「수능」 「본고사 부활」 「내신」등등은 그간의 입시제도가 남긴 전리품들이다. 21세기 초입이면 대학정원이 넘쳐 입시열풍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말도 맞는 것 같지는 않다. 학벌을 중요시하는 풍조, 좋은 대학을 나와야 출세하는 풍조가 사라지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지금의 학부모들은 더하다.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어린이들을 그냥 뛰어놀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경쟁적으로 미술 피아노 속셈학원에 보내고, 수영 스케이트강습을 받도록 한다. 국제화 세계화라고 하니까 영어학원에도 내몬다. 이를위해 가난한 사람은 생활비를 줄이고, 돈많은 사람은 뭉텅이 돈을 들인다. 이 과정에 자살하는 부모가 생기고, 가정에서 부인들이 파출부로 내몰린다.

자녀들을 대학은 물론 중학교때부터 외국에 내보내 공부하게 하는것도 빗나간 교육열을 비켜가는 한 방편이 될수 있을 것 같다. 일찌감치 외국어를 터득케 하고, 보다 좋은 방법으로 창의력을 고양시키는 것이 국익에 더 보탬이 될수 있을 테니까. 누구나 다 자기 딸이 정경화 장영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국내에서 엄청나게 예능과외에 돈을 대느니 일찌감치 해외로 내보낼 일이다. 소득 1만 달러시대에 걸맞은 교육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면, 「5·31 교육개혁」은 언발에 오줌누기 식 처방이 아니었을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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