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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실천­「물논쟁」소설의 운명에 관련하여(신문학사 탐구: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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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실천­「물논쟁」소설의 운명에 관련하여(신문학사 탐구:12)

입력
1996.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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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이냐 체험이냐” 카프내부 논쟁/이데올로기와 관찰의 논쟁 넘어 리얼리즘의 길로/「공산주의협」으로 복역한 김남천/지독한 갈증의 고통에 수련도 무용/이념 보다 생리적 체험을 더 중시/카프 서기장 임화는 이론적 혹평/“어디서고 투쟁해야” 대전제로 작가 개인의 계급속 실천 앞세워객:카프문학이 운동으로서의 문학범주에 기울어지면 그럴수록 전술·전략의 치밀성이 문제되겠지요. 「너 죽고 나 죽자」식의 아나키즘과 결정적으로 구분되는 점이 여기에 있겠지요. 이른바 창작방법론이란 단계별 전술·전략에 대응되는 것이겠는데, 제2차 방향전환론이 궁금합니다.

주:재건공산당 사건(공산주의협의회 사건)이 터진 것은 1931년 10월. 고경흠 등 17명이 종로서에 체포된 바 있습니다. 코민테른의 이른바 1928년 8월 테제(한 나라엔 공산당도 하나여야 한다는 것)에 따라 조선공산당도 해체되기에 이르렀지 않습니까. 조공이 중국공산당 또는 일본공산당에 흡수될 수밖에. 국가가 없으니까. 그러나 1931년에 와서 한위건, 양 명, 고경흠등이 일본, 중국 등지를 왕래하여 공산당 재건운동을 펼쳤는데, 여기에 카프문인들이 관여되어 체포되기에 이른 것. 임화(1908∼1953), 김남천(1911∼?), 안막, 김팔봉, 이기영등이 그들. 이를 두고 전주사건(1934∼35)과 구별하여 카프 제1차 검거사건이라 부릅니다.

객:카프문인엔 김복진을 빼면 당원이 없지 않았습니까?

주:카프문인 중 기소된 문사는 김남천(본명 김효식) 뿐이지요. 나머지는 3개월 유치장살이에 지나지 않았고. 김남천의 경우도 이 사건과는 관련없었지요. 평양 고무공장 파업에 관여했기에 기소된 것이니까.

객:감옥에서 나온 조선의 바렌티노 임화(조선일보, 1932.1.7)란 정확히는 감옥이 아니라 유치장(기소 이전)살이를 겪은 것이었겠군요. 진짜 감옥살이를 한 김남천은 얼마나 복역했습니까?

주:약 1년 반. 이 사실은 카프운동사에서는 두 가지 의의가 있지요. 하나는 이른바 제3전선파의 등장에 관련된 것. 박영희, 김팔봉등 구카프계를 누르고 등장한 제3전선파는 도쿄(동경)에서 귀국한 소장파들. 임화, 김남천, 안막, 홍효민, 한식 등이 그들. 카프 도쿄지부가 생긴 것은 1927년 제1차 방향전환 무렵이며 중심인물은 일본공산당 소속 이북만. 이른바 「무산자」의 중심인물. 이 소장파들이 귀국하여 카프 헤게모니를 쥐게 됩니다. 서기장 임화를 비롯, 이들이 공산주의자 탄압이 강화하는 시대성에 대처하는 방식이 바로 제2차 방향전환이지요. 「전위의 눈으로 세계를 본다」는 명제가 전략이었지요. 이른바 볼셰비키화.

객:지하운동의 성격이란 말입니까? 전략이라면 극단으로 나갈 수 없음이 전제되지 않습니까? 그 때의 정세에 대응하여 최선의 방법을 모색하기라면 합법적으로 출판되는 매체 이용의 한계선이 이 때 무너졌단 말입니까?

주:카프의 공식적 해체는 1935년(5.21)이지요. 그 동안 카프의 운동은 합법적인 매체의 존속 아래에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엔 카프의 내면화 과정이 전개되었고.

객:합법적 매체의 이용이라든가 내면화의 문제란, 요컨대 작품 내의 논의이겠군요.

주:맞습니다. 이 점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유명한 「물논쟁」의 의의를 파악하기 어렵지요. 작품으로서의 카프문학이지 운동으로서의 카프문학일 수 없는 그런 상황의 대두가 물논쟁에 관련되어 있지요.

객:출옥한 김남천이 맨 먼저 쓴 작품이 단편 「물!」(1933.6) 아닙니까. 내용이 썩 단순하더군요. 두 평 칠 합(이평칠합)의 감방에 13인의 수인이 29도나 되는 삼복더위에 시달릴 때 제일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 물이라는 줄거리더군요. 작중 화자이자 주인공 「나」의 옥중 체험기라고나 할까. 좀 특이한 것은 작품 끝에 작가의 맨 얼굴 드러내기가 달린 점이라고나 할까. 「백도의 여름이 다시 오련다. 이 한 편을 여름을 맞는 여러 동무들에게 올린다」라고.

주:이 작품에 대해 월평에서 임화가 혹평을 했고, 그로 말미암아 두 사람 사이에 대논쟁이 벌어졌지요. 구카프계 김팔봉, 박영희 사이에 벌어진 내용·형식논쟁과 흡사하다고나 할까.

객:옥살이를 해보니, 이념 따위보다는 물이 제일이더라, 그러니까 문자를 쓰자면 이데올로기보다 생리적·체험적 사실이 우위에 선다는 뜻으로 임화가 읽었던 모양이지요.

주:작품 속엔 이런 대목이 들어 있지요. 갈증을 참기 위해 오랫동안 수련을 쌓았으나 무용했다는 것. 그 수련의 방편이 헤겔(마르크스)이었다는 것.

「사실 오랫동안의 경험은 나에게 어느 정도까지 이것(생리적 욕구)을 가능케 하였다. 나의 눈은 명백히 활자의 하나하나를 세었다. 꼬박꼬박 활자를 줍듯이 나의 정신은 그것에 집중하였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닥쳐올 황혼을 기다려서 비로소 비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십분도 못 계속하여 나는 내가 글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활자를 읽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그 활자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 지를 모르고 읽고 있는 것이다」

객:관념이나 이데올로기 우위론이냐 생리적 경험주의가 우위냐를 두고 벌어진 논쟁이었겠다. 과연 쟁점다운 쟁점이겠네요.

주:카프 서기장 임화의 처지에서 보면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 수 없지요. 감옥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도 이념투쟁을 해야 된다는 것이 임화가 선 자리니까.

객:쉽게 말하면 이론과 실천의 과제 아니겠습니까. 모든 운동권이 안고 있는 가장 어려운 쟁점이니까.

주:임화가 문제삼은 것은 이론과 실천의 분리 문제로 요약됩니다. 작품과 작가적 실천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 경우 작가적 실천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운동권문학에서 이것만큼 중요한 과제도 많지 않았지요. 임화의 문제 제기가 갖는 비평사적 의의가 여기 있습니다.

객:알겠소. 작가적 실천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까지나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의 조류 가운데서 문제되는 실천이어야 한다. 그런데 「물!」의 작가는 어떠한가. 그런 문학운동의 연장선상과는 아무 관련 없는 것. 그 구체적인 조건들로부터 따로 떼어다가 인간적 실천 일반 가운데서 해소시켜 버렸다. 그러니까 베이컨류의 경험주의적 차원에 떨어져 버렸다….

주:김남천의 반론은 이렇지요. 작가의 실천과 이론을 형이상학적으로 분리하는 임화는 저 데보린학파의 아류다라고. 그러나 설득력이 없지요. 김남천의 실천이, 개인적일지라도 그것은 역사적·사회적으로 제약된 계급 속의 실천이어야 한다는 것.

객:실천이란 결코 개인적 의미의 작가적 실천에서 모든 해답을 찾을 것이 아니라 문학운동의 일반적인 실천이어야 하고, 더 나아가 문학운동이 종속되어 있는 계급투쟁의 실천이어야 한다는 것. 요컨대 (1)개인적, (2)문학적, (3)계급적 실천으로 연결되어야 진정한 실천이다. 이에 비추어 보면 김남천은 (1)에 겨우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김남천은 감옥 속에서도 (1)갈증에서 출발, (2)헤겔(마르크스)을 똑똑히 읽어야 하며, (3)나아가 간수와 물담당 등과의 투쟁을 벌이는 그런 작품을 써야 했을 것이다.

주:임화 쪽이 이론상 한 수 위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김남천으로도 그만한 자부심이 없을 수 없지요. 공산주의협의회 사건과 연루된 카프문인 중 기소된 것은 오직 그만이었으니까. 최초로 기소되고 복역한 김남천 그는 남다른 투쟁경력을 가졌던 것이니까.

객:이 논쟁에서 김남천이 받은 충격이 컸겠군요.

주:한동안 붓을 놓았을 정도. 그는 자기고발론을 비롯, 내적 갈등을 겪은 끝에 「남매」(1937), 「소년행」(〃) 등으로 서서히 자기극복에 나아가 마침내 임화의 이론과 맞서는 새로운 장을 열게 됩니다. 30년대 소설계의 한 장관이라고나 할까.

객:30년대 중반 이후만큼 문제적인 시대는 없다는 것은 그 속에서 비로소 카프이념의 내면화가 가능했다는 뜻입니까?

주:그 뿐만이 아니지요. 30년대 후반이란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공산주의) 사이에 파시즘(절대주의)이 끼어든 세계사적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나아갈 지평은 어디인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 아니었던가. 민족해방을 이루는 길은 이 세가지 정세의 변화에 달렸는 지도 모른다는 초조감이랄까 위기의식이 충만한 시대, 소설이란 이러한 시대의 방향성 지시용이어야 했던 것.

객:루카치의 소설관을 비로소 실감했겠군요. 소설은 시민계급(부르주아)의 서사시(헤겔)라는 것, 따라서 과도기적인 것이며 시민계급과 운명을 같이 하는 것. 근대(시민계급)가 끝나면 대서사양식으로서의 소설의 변신이 불가피하다는 것.

주:임화가 내세운 소설의 전망을 도식화하면 「주제·성격·사상」. 한편 김남천의 그것은 「풍속·관찰·묘사」. 이 두 도식이 30년대 후반기 소설론의 두 산맥이라 할 것입니다. 이데올로기가 불가능한 시대에도 이데올로기에 매달리느냐, 발자크적인 관찰(풍속)에 매달리느냐. 여기에서 비로소 우리 소설사는 장편(Roman)의 본질에 직면하지요.

객:김남천의 유명한 평론 「소설의 운명」(1940)이 그런 것입니까?

주:루카치의 이론을 처음으로 수용한 이 평론의 의의는 무엇인가. 「리얼리즘의 길밖에 없다」로 요약되는 곳에서 찾을 것입니다.<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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