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은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 늘 들어온 말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이 소홀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경쟁력이 어느 정도 허약하고 우리 상품이 세계시장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그 구체적인 실상이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한국일보가 13일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한 국내 주요 산업의 국제경쟁력 실태는 세계무역기구(WTO)체제하의 무한경쟁시대를 맞이하고서도 안일과 태만에 빠져 세월을 허송해 온 정부당국과 기업들에 일대 경종을 울려 주는 충격적인 보고서라 할 만하다. 어찌됐건 경제는 잘 굴러가는게 아니냐는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는 국민들에게도 경각심을 갖게 해주는 조사결과다.
우리는 생산기술면에서 어느 정도 선진국과 대등한 수준이나 설계 및 제품개발 등 원본기술에서는 아직 절반수준에도 미달하기 때문에 품질로 선진국과 싸울 수는 없게 돼있다. 또 높은 임금과 고금리 고지가 등 고비용구조 때문에 가격으로 후발개도국들과 싸울 수도 없게 돼있다. 가격으로도 안되고 품질로도 안되고 앞뒤에서 조여드는 선후진국들의 협공 때문에 한국의 경쟁력은 본질적인 한계에 부닥쳐 있다는 것은 해묵은 얘기이며 이 때문에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론이 나온 것이 벌써 80년대 얘기다.
고조됐던 위기론과 함께 한때 정부와 재계가 손을 잡고 대대적인 국가경쟁력강화운동을 전개했던 것도 바로 경쟁력의 본질적 한계를 인식한 결과였다. 그러나 95년 현재 국내 23개 핵심산업중 가격경쟁에서 비교우위가 있는 것은 자동차등 5개에 불과하고 비가격경쟁에서는 거의 전 산업이 선진국은 물론 후발개도국에도 뒤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90년 3.2%와 3.3%였던 한국과 중국산 카메라의 미국시장점유율이 95년 3.5%와 29%로 상전벽해가 되고 가죽신발은 한국이 23.3%에서 3%로, 중국이 7.9%에서 37.4%로 급등락한 것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요란했던 국가경쟁력강화가 한낱 헛된 구호에 불과했었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참담한 실상이다.
달러당 85엔까지 내려간 초엔고 덕분에 때아닌 호황을 만나 우리경제는 베짱이의 여름처럼 흥청망청 좋은 세월을 허송했다. 1백10엔대의 엔저시대가 다시 도래하자 수출은 벽에 부딪치고 경기는 급랭하고 적자로 외채가 쌓이면서 변한게 없는 우리 경쟁력의 초라한 실상이 다시 드러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국가적인 경각심이다. 우리 경쟁력의 실상에 대해 냉엄한 현실인식을 갖고 경제를 재건한다는 각오로 정부가 앞장서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총력체제를 다시 이끌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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