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한 전역을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실전 배치해 놓고 있는 마당에 한미미사일 각서에 묶여 우리만 미사일 개발을 일방적으로 제한받는다는 것은 시정돼야 마땅할 현안이다. 그런 뜻에서 이번에 양국이 사거리 1백80㎞ 이상의 미사일 개발이 가능하도록 조정키로 합의한 것은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평가할 만하다.10일부터 이틀간 서울에서 열린 한미대량파괴무기 비확산정책협의회의 핵심 의제는 한국이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에 가입하는 문제와 이에 따른 「대미 보장사항」(미사일 각서)의 조정문제였다. 여기에 가입하면 사거리 3백㎞ 탑재중량 5백㎏ 이상의 미사일 완제품과 생산장비를 비회원국에 마음대로 팔 수 없게 된다. 그대신 사정(사정)과 중량의 제한범위 안에서 자체 개발이 쉬워진다. 회원국간에 미사일 기술과 정보교환이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사정 1백80㎞ 이상의 미사일 자체 개발을 제한하고 있는 한미미사일각서는 이처럼 우리가 MTCR에 가입함으로써 그 내용이 자동적으로 조정되지 않으면 안되게 돼 있다. 문제는 MTCR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한국의 가입이 환영할 만한 일이긴 하지만 동시에 한국의 미사일 자체 개발수준을 높여줄 수밖에 없는 모순된 처지에 놓이게 되는 점이다.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개발현황과 비교할 때 미국이 미사일각서를 구실로 우리의 미사일 기술개발을 원시적 수준에 묶어 두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불합리한 일이었다. 북한은 이미 80년대 중반부터 사정 3백㎞의 스커드B, 5백∼6백㎞급 스커드C를 만들어 실전배치를 완료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정도만으로도 남한 전역이 북한의 미사일 공격권 안에 들어 있는 셈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93년에는 1천㎞의 노동 1호를 개발했고, 1천3백㎞급 대포동 1호와 3천5백㎞의 대포동 2호를 시험·개발중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 우리의 대응수단 개발을 못하게 한다는 것은 우리 국방을 미국에 맡겨둔채 두손 놓고 있으라는 의미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미국은 북·미기본합의에 따라 베를린에서 열리는 미사일협상을 통해 북한의 MTCR가입을 추진함으로써 종국에는 남북의 미사일 수준을 비슷하게 가져간다는 계획이지만 북한을 거기까지 끌고가려면 또 얼마나 많은 한미간의 마찰과 양보를 거쳐야 할지는 경수로협상이나 쌀지원회담의 경위가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미국에 말하고 싶은 것은 미사일에 관한한 한국은 북한에 비해 형편없는 약소국이며 북한을 끌어내려면 한국을 강하게 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점이다. 한미양국이 미사일각서의 모순을 조정하기로 원칙적 합의를 본 것은 응당 그렇게 돼야 할 일이지만 실제로 기술이전이 원활히 이뤄지자면 앞으로 미국의 더욱 성의 있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강한 우방만이 미국의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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