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욕구가 늘면서 연주장에 새로운 청중층이 형성되고 있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일부 청중의 몸에 익지 않은 극장에티켓 탓에 곤혹스런 순간이 다반사다. 연주의 흐름을 끊고 분위기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것이 잘못된 「결례의 박수」다.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등 여러 악장으로 구성된 작품 연주는 모든 악장이 끝난 뒤에 박수를 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럼에도 각 악장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쳐 지휘자나 단원 뿐 아니라 세련된 청중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한다. 연주회장의 음악감상은 극도의 예민한 청각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박수의 실수는 그저 웃어 넘길 것이 못된다.
악장 사이 박수 금지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기적 지휘자 푸르트벵글러가 1922년 36세의 나이로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가 되면서부터 그 규율을 통용시킴으로써 지금은 불문율이 돼버렸다. 악장 사이 박수소리가 음악의 흐름에 별 도움이 못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오페라의 아리아나 이중창, 발레의 멋진 솔로나 듀엣이 끝났을 때는 「브라보」와 함께 박수를 치는 것이 훌륭한 청중의 매너다.
몇 해전 NHK교향악단이 내한해 차이코프스키 「비창」을 연주했을 때의 일이다. 마지막 악장의 맨 끝 부분 숨소리조차 멎게 하는 침울함이 깔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만 지휘자가 손을 내리기도 전에 성급하게 박수를 쳤다. 순간 장내는 심한 부끄러움으로 가득차 버렸다.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뿐 아니라 스케일이 큰 곡엔 특히 이런 박수함정이 많다.
덧붙여 박수타이밍이 중요하다. 모든 악장이 끝난 경우에도 곡이 느릿하거나 극히 조용하다든가 침울하게 끝나는 곡은 그 여운까지 연주자와 함께 호흡해야 한다. 그러나 이럴 때 우리 청중은 「빨리빨리 증후군」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마치 경기장에서 100m 달리기선수의 출발을 보는 것 같다. 「열린음악회」의 「여흥박수」이후 성급하거나 경쾌한 곡만 나오면 무조건 박수로 박자를 맞추는 현상이 생겨났다. 박수소리의 「공해 배출처」역할을 한 셈이다. 자막으로 박수에티켓을 계몽하는 것은 공영방송의 책임일지도 모른다.
이제 월드컵을 통해 21세기 문화국가로서 위상을 세워야 한다는 구호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거창한 「보랏빛 세미나」도 좋지만 연주장매너 지키기와 같은 작은 실천이 앞서야 한다. 바야흐로 문화계몽시대다. 연주회 시작 전 안내방송, 텔레비전 공익광고를 통한 위트 넘치는 교육은 그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초중등학교 음악시간과 교과서도 연주장매너를 가르쳐야 한다. 박수 뿐 아니라 악장 사이에 경쟁적으로 하는 헛기침도 공해이긴 마찬가지다.<음악평론가>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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