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중단된지 9개월만에 유엔의 대북한식량지원호소를 받아들여 3백만달러상당을 돕기로 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우리의 지원규모는 미국·일본의 6백만달러의 절반수준이지만 순수하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한의 식량난 해소에 다른 나라들과 함께 동참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적지가 않다.그러나 이번 지원이 정부의 독자적 결정이 아니라 유엔의 적극적 호소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하고 적십자사를 통한 지원도 종교계 등 각계의 압력에 순응한 결과가 된 듯해 개운치가 않다. 무엇보다 오는 8∼9월까지 북한의 식량사정은 별문제 없다고 했던 정부가 서둘러 지원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위국에 직면할 것이라는 유엔기구들, 특히 미국의 집요한 주장을 수용하여 이끌려가게 된 것은 결국 정부의 일관성없는 대북정책의 단면을 또 한번 드러낸 셈이 된 것이다.
정부의 경직된 대북 쌀지원 정책은 작년 여름 15만톤 지원과 관련한 시행착오에서 비롯된다. 확고한 장치의 마련 없이 정치적 성과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 나머지 주고도 뺨을 맞는 격이 됐고 그 뒤 한국정부의 대북식량정책은 경직 일변도로 전환, 상황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유연성을 잃었다. 물론 도움을 받는 측인 북한의 태도는 너무나 비상식적이고 어느면에서는 염치마저 외면해 왔다. 여러 국제기구의 대표들에게 수해현장을 보여주고 또 각국과 유관국제기구에 대해 원조를 호소하면서도 한국에는 공식요청을 않고 비공식경로로만 손을 벌리는 북한의 태도는 「비정상」임이 분명했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직접 요청이 있을 때 호응 등 이른바 「북경3원칙」을 세우고 우방들에 북한의 개방촉구, 지원원칙을 설득한 것은 당연했다. 문제는 정부가 「북한의 비상식」에 집착하는 동안 공조를 약속했던 미국·일본은 클린턴 재선과 수교추진 등 정치적 실리를 감안, 대북지원을 꾸준히 모색하여 우리를 당황케 한 것이다. 결국 미국은 북한의 돌연한 붕괴를 막기 위한 이른바 연착륙전략에 따라 유엔을 움직여 2차로 4천3백60만달러규모의 지원을 공식화하고 만 것이다. 사실상 식량지원에 관한 한 한·미·일의 공조는 무너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여기서 아쉬운 것은 정부의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조심스러운 눈치보기식의 대북자세다. 기왕 국제기구 주도의 공동지원인 만큼 규모도 미·일 수준으로 책정하고 품목 역시 한정하지 말았어야 했다. 또 적십자사를 통한 민간의 지원에도 품목을 제한 않는 것이 타당하다.
이와함께 정부는 유엔에 대해 이번에 모집한 자금 식량 약품 등이 정확히 주민들에게 배급되는지, 혹시나 군용으로의 전용은 없을 것인지 현지감독 등 투명성 보장을 요구해야 한다. 또 연간 2백만톤씩 모자라는 만성적인 북한의 식량난을 매년 모아서 주기보다 유엔 주도하에 농업체계 개선과 영농기술지원 등으로 장기적 대책을 강구할 것도 정부가 구체적인 안을 갖고 추진토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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