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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공동개최 양국지성 특별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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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공동개최 양국지성 특별 대담

입력
1996.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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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관 한림대교수·야스에 료스케 이와나미서점 사장/“한일 관계 재정립 세계화해시대 열자”/화합의 축제는 앞으로 6년간의 협력이 좌우/“일 협력·양보정신 인색 아쉬움 과거 청산 전향자세 계기돼야” 지명관 교수/“정치·민족 초월 스포츠 정신을 남북 분산개최 주장 깊은 감동” 야스에 사장2002년 월드컵은 한일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지구촌축제가 되어야 한다. 한국일보사는 창간 42주년을 맞아 공동개최의 의미와 과제에 관한 한일 지성의 특별대담을 마련했다. 대담자는 한림대 일본학연구소장 지명관교수(72)와 일본 이와나미(암파)서점의 야스에 료스케(안강량개·61) 사장. 일본의 과거청산을 위해 노력해온 야스에씨는 한국은 물론 북한에도 지인이 많은 진보적 지식인이다. 대담은 지교수가 체류중인 일본 도쿄에서 이루어졌다.<편집자 주>

지:5월31일 월드컵이 한일 공동개최로 결정됐다는 충격적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우선 흥미로운 것은 한국의 신문을 보면 승리했다는 기분이고 일본신문은 뭔가 패배했다는 논조였습니다. 공동개최 결정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서로 다르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야스에:나는 스포츠, 특히 축구를 정말 좋아합니다. 하지만 월드컵을 놓고 이렇게 대소동을 벌여야 하는가는 의문입니다. 물론 월드컵은 세계 40억명이 지켜 보고 21세기에 처음으로 아시아에서 개최되며, 그것도 공동개최라는 점에서 큰 뉴스거리입니다. 그러나 세계에는 그것 말고도 중요한 문제가 많습니다. 일본에 매일 「왜 공동개최가 됐는가, 누가 이런 책략을 부렸나」 하는 식의 기사가 쏟아지는 것은 문제입니다. 한국도 그럴지 모르겠으나 매스컴이 뉴스성보다 소동으로 너무 흘러 자신이 소동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듭니다.

대일감정, 서울올림픽 성공경험등으로 볼 때 한국의 소동은 이해가 갑니다. 일본은 「우리가 이겼어야 마땅한데 왜 이런 예상외의 공동개최결과가 나왔나」로 소동입니다. 한국측은 정부나 양식있는 언론이 단독개최의 경우 한일관계, 양국 국민감정에 생길 문제를 걱정했지만 일본에는 막판의 외무성 일각을 제외하고는 그런 걱정을 한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처음부터 일본이 한국에 양보하고 다음 대회를 한국의 응원을 받아 일본이 유치했으면 어땠나 하는 생각입니다.

지:양국이 대화로 공동개최를 결정해 국제축구연맹에 함께 개최하겠다고 신청했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서로 혼자 하겠다고 소동을 부리고 싸우다가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같이 하라고 핀잔을 당한 모습이거든요. 한일 양국이 경쟁할 때 세계가 싸우지 말라고 해결하려 나선 것은 재미있는 시대변화입니다. 처음부터 공동개최를 받아들이겠다는, 아시아 전체를 생각하는 관점이 일본에 왜 불가능했는가 아쉽습니다.

야스에:이른 바 비전의 문제겠지요. 일본은 일본이라는 나라가 2002년까지 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했어요. 스포츠는 역시 인간의 즐거움인데 좀 더 여유를 갖고 임했어야 했습니다.

지:공동개최 결정 직전에 유럽신문은 무척 아벨란제회장을 공격했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슈미트 호르스트 독일축구협회 사무국장의 말이 처음부터 비전을 갖고 공동개최를 주장한 훌륭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독일과 프랑스는 대립관계를 극복하고 화해를 성립시켰는데 그게 왜 한일간에는 불가능하느냐는 것이었지요. 「정치가 안되면 스포츠로 해보자, 미국과 중국의 국교도 외교가 아니고 탁구가 먼저였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공동개최는 평화와 희망을 사랑하는 인간양식의 승리라는 것입니다. 단독개최로 우리가 이겼다고 즐거워하는 것은 반이성적이라는 사고방식이 담겨 있는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스포츠문제지만 대단히 상징적인 사실이 발견됩니다. 이젠 세계가 대립과 일방의 승리보다는 화해를 바라는 시대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아직도 정치적 침략이나 경제력등으로 일방적 승리를 거두겠다는 아집에 빠져 있지 않나 싶습니다. 상호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합니다. 야스에선생처럼 양보했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일본은 아직 양보와 협력을 말하지 못하는 사회적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야스에:지구상에서 보면 가장 가까운, 어떻게 보면 나란히 앉아 있는 두 나라가 싸우는 것은 정말 볼썽 사나운 일입니다. 역시 양국이 공동개최를 세계에 제안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지금부터의 세계는 보다 인간다운 사고가 중심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점을 갖추지 못하면 일본사회는 전체가 보이지 않게 됩니다.

공동개최 결정이 나왔을 때 놀라고 실망할 것인가, 새로운 희망이며 멋진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가 그런 인간다운 사고에 의해 결정된다고 봅니다.

지:일본에 그런 양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그런 양식이 대국민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도 물론 단독개최를 향해 뛰긴 했지만 공동개최가 된다면 그것도 좋다는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한일관계, 2000년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위해서도 공동개최는 바람직하다는 국민설득이 한국에서는 비교적 성공한 것 같습니다. 양국의 진정한 승리는 지금부터 6년간 양국 국민이 어떻게 협력해 공동개최를 성공적으로 치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일본도 앞서의 양식을 국민적 합의로 만들어 내야 합니다.

야스에:2002년까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느냐도 문제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양국 정부와 축구관계자가 축구, 스포츠를 사랑하는 정신으로 운영과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치적 계산이나 내셔널리즘적 관점을 배제하고 절대적인 스포츠정신으로 문제에 임해야 합니다. 애초의 축구정신으로 돌아가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면 정말 엄청난 것이 두 나라 사이에 생기리라고 믿습니다.

공동개최가 결정된뒤 일본정부도 이를 환영했지만 이 기회에 일본정부는 조금씩이라도 구체적으로 역사문제를 청산해야 합니다. 최근의 종군위안부에 대한 총리 사죄편지 문제를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물론 민간기금을 통한 위로금 지급과 사죄편지식 해결에 찬성하지 않지만 편지내용에 대해 「사과는 하지만 사죄는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어리석은 얘기입니다.

지:과거청산에 대한 일본정부의 태도는 월드컵 공동개최와 비슷합니다. 세계가 시키니까 억지로 공동개최를 받아들인 것처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일본의 태도가 월드컵 공동개최의 성공 여부에도 걱정거리입니다. 한국이 그걸 고쳐줄 힘이 있는 상황도 아니고.

야스에:스스로 고쳐야죠(웃음).

지:세계가 우리의 화해를 원하고 있습니다. 일본에는 물론 한국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일본이 스스로 그런 말을 못 한다면 한국이 좀 더 끌어주는 노력을 했으면 합니다. 탁구치듯이 미루지 말고 우리에겐 이런 책임이 있다고 서로 나섰으면 좋겠습니다.

야스에:만약 정치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들지만 않는다면 다들 냉정으로 돌아가 월드컵의 성공을 생각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거기에는 매스컴의 책임이 큽니다. 소동으로 보도하지 말고 멋진 스포츠행사를 공동개최하고 성공시켜야 한다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것입니다.

지:지금 한국에는 그런 건전한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고 봅니다. 일본이 과거청산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한일관계의 진전을 위해 대회를 성공적으로 협력해 이끌어야 한다고 받아들이는 한국민의 자세에 강한 인상을 받고 있습니다. 일본 대중문화문제도 민족주의만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문화는 서로 경쟁해가며 상호 발전해간다는, 일방적 승리는 불가능하다는 시대의 흐름을 한국민도 알아야 합니다.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일본은 대국적 견지에서 과거청산을 전향적으로 해야 하고 한국은 일종의 피해자의식을 탈피하기를 주문하고 싶습니다.

야스에:한국이 최근 그런 글로벌한 사고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 놀라고 있습니다. 얼마전 한 심포지엄에서 한국측이 단순히 한일관계만이 아니고 그걸 뛰어넘어 아시아, 세계 전체를 향해 양국이 경쟁·협력해나가야 한다는 견해를 표명해 일본에도 그런 비전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뒤 에토망언이 튀어나와 우습게 됐지만 말이죠. 일본쪽에 문제가 있겠지만 양국간 과제를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해결해나가려는 보이지 않는 흐름이 나오리라 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월드컵은 정말 좋은 기회입니다. 2002년까지는 한일, 남북, 북일간에 정치적 난제들이 많겠지만 순수하게 스포츠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좋은 기회를 살려가야 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결과적으로 양국 국민관계와 역사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정치적 이용은 위험합니다. 멋진 대회를 성공시키면 양국간의 새로운 모델이 결과적으로 나와 양국간에 영향을 주게 되는 거죠. 일본이 과거청산을 못하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도 한국민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천천히 변하고 한국은 하나의 계기로 한꺼번에 변화하는 경향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오에 겐자부로(대강건삼랑)씨의 말처럼 과거청산이 되지 않더라도 우정은 계속돼야 하며 그속에서 청산의 길을 열어가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야스에:아직 일본은 진정한 글로벌한 사고가 부족한지도 모릅니다. 4월20일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위총회에서 종군위안부 결의를 막기 위해 외무성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성공했다고 말하고 있어요. 나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권위가 결의를 하든 안하든 일본이 해야 할 도리는 해야 한다, 외무성이 성공하면 할수록 세계 속에서 일본의 신뢰도는 실추된다고 말이죠. 월드컵 유치과정도 이렇게 자기 그림자를 보지 못하는 행동과 닮았던 게 아닌가 합니다.

지:일본정부가 새로운 시대에 뒤처져 있는 건 틀림없다고 봅니다. 일본은 일국평화주의의 전통이 강하지만 한국은 역사경험에서도 동아시아평화가 없이 한국의 평화는 없다는 생각일 것입니다.

야스에:공동개최 결정 순간 한국측에서 남북분산개최 주장이 나왔을 때 당연하다고 여기면서도 감동했습니다. 어려운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지만 멋진 축구대회를 준비한다는 순수한 스포츠정신과 준비과정 속에 풀리는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정신 속에서 축구를 좋아하고 잘 하는 북한도 마음을 열고 참여할 때가 오지 않겠습니까. 남북이 분산개최를 결정한다면 일본은 반대할 수 없습니다.

지:지금부터의 6년은 정말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중요한 시기입니다. 월드컵 공동개최는 양국이 그동안의 과제를 해결하고 세계의 희망으로 떠오르는 역사와 시대의 발소리로도 들립니다.

야스에:스포츠 얘기가 결국 정치얘기처럼 끝났지만 그만큼 공동개최가 상징하는 게 크기 때문입니다. 정말 신이 준 기회라는 말에 동감합니다. 대회의 성공을 위해 양국 스포츠, 문화, 매스컴 관계자들이 모여 심포지엄이나 포럼을 갖자는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정리=신윤석 도쿄특파원>

◆지명관

▲1924년 평북 정주출생 ▲54년 서울대 종교학과 졸 ▲60년 덕성여대 조교수·서울대 강사 ▲62년 서울대대학원 졸 ▲64년 「사상계」주간 ▲67년 미뉴욕 유니온신학교 입학 ▲70년 덕성여고교장 ▲74∼93년 도쿄여자대 객원교수 ▲94년∼현재 한림대 일본학연구소장 ▲저서 「아시아 종교와 복음의 논리」 「한국현대사와 교회사」 「저고리와 요로이」 「한국에서 본 일본」등.

◆야스에 료스케

▲1935년 이시카와(석천)현 가나자와(금택)시 출생 ▲58년 가나자와대 법문학부 졸, 이와나미 입사 ▲67∼70년 미노베 료우키치(미농부량길)도쿄도지사 특별비서 ▲71년 이와나미 복직 ▲72년 「세카이(세계)」지 편집장.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김대중인터뷰」등 한국문제 적극보도 ▲88년 이와나미 편집담당 상무 ▲90년∼현재 사장 ▲저서 「고립하는 일본」(88년)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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