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인간의 진실을 말해주는 소설언젠가 평론가 유종호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작가적 편의나 매문을 위해서 역사를 왜곡하며 그것을 예술이나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하는 것은 가장 타기할만한 진실에의 반칙행위이다. 이념의 이름으로 혹은 역사해석이라는 미명하에 일방적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 너무나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이런 말을 하면서 그는 「해방 전후를 다룬 대부분의 소설들」을 그 예로 들었다. 나는 비록 해방전후의 시기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지만, 역사의 진실이 무엇이며 인간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 그 시기를 직접 체험해 본 사람으로서의 진솔한 실감을 바탕에 깔고서 제기된 유종호의 이런 발언에 대하여 충심으로부터의 지지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서 나는 또한, 유종호가 언급한 문제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고 문학적으로도 높은 경지를 보여주는 좋은 작품들이 꾸준히 나와서, 그가 지적한 「반칙행위」의 산물들이 그동안 남겨놓은 폐해를 극복하는데 기여했으면 하는 소망을 품어보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볼 때, 박완서가 작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작품을 칠레의 어떤 소설과 대비하면서 부정적으로 평가한 글이 얼마 전에 나온 바 있으나 이 작품 속에 깃들어 있는 진실의 힘을 제대로 파악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진실의 힘을 저 「반칙행위」의 소산들 속에 들어 있는 것들과 한 번 냉정하게 견주어 본 사람이라면, 서양 특유의 사고방식과 인간관에 지나치게 많이 기울어진 결과로 배태된 그 글의 무리한 논지에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번에 나온 「문예중앙」 여름호를 보면,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보다 훨씬 규모가 작지만 앞서 유종호가 언급한 문제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고 또 문학적으로도 높은 경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그 작품과 완전히 동일한 면모를 갖는 소설이 한 편 실려 있어서 눈길을 끈다. 이호철의 중편 「남녘 사람, 북녁 사람」이 바로 그 작품이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와 마찬가지로 작가 자신의 회상을 기초로 하면서 자못 성숙한 안목으로 역사와 인간의 깊은 진실을 포착하고 있는 이 작품을 읽어나가다 보면 이념이라든가 역사해석과 같은 용어들을 앞세워 역사의 왜곡을 서슴지 않는 작품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격조를 느끼며 절실한 감명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가 하면 이 작품은 우리시대의 젊은 작가들 중 일부가 보여주는 지나치게 좁고 가볍고 얇은 문학세계에 대하여 의미심장한 반대명제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에 값한다고 말할 수 있다.<이동하 문학평론가·서울시립대교수>이동하>
<참고> 작품 제목 「…북녁 사람」은 맞춤법에 맞지 않으나 작가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 이므로 그대로 표기함.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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