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정부 주도의 이른바 「국가정보화 경쟁시대」로 접어들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미국의 국가정보기반(NII)및 세계정보기반(GII)계획이나 유럽연합(EU)의 범유럽네트워크(TEN) 건설은 다같이 사회 전반의 정보화촉진을 통하여 경제의 활성화, 경쟁력의 강화, 그리고 소비자의 복지증대에 그 취지를 두고 있다. 일본 역시 「지적 창조사회」의 실현을 목표로 「21세기 프로그램」(통산성)과 「정보통신기반」(우정성)의 추진을 발표했다.정보화는 한 마디로 경제·사회의 효율성을 높이는데 기여한다. 이들 계획은 정보사회가 갖는 구조적 변혁에 대비하여 단순히 전산화, 자동화및 네트워크 연결, 그리고 이와 관련된 기술개발에 그치지 않고 문화나 제도까지도 바꾸자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정보·통신시장이야말로 다른 부문에 비해 가장 빠른 속도로 변모를 거듭하고 있는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소비자의 정보, 지식, 통신에 대한 수요증가나 욕구의 다양화에 맞추어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 많은 경우 기술혁신에 힘입어 수요를 창출한다는 인상도 준다. 소위 수요중심의 시장경제 모습을 실감케 한다. 이러한 시장의 흐름에 맞추어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영, 독점및 규제의 대상이었던 통신서비스 부분에서 이제 대부분 국가 내에서 민영화, 경쟁도입및 규제철폐가 시도되고 있다. 심지어 현재 중단되기는 했으나 세계무역기구(WTO) 테두리 내에서 시내외 전화와 같은 기본통신서비스마저 98년 1월까지 개방관련 협상이 종결될 전망이다.
필자가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정보·통신시장의 특성을 반영하는 이러한 추세는 한동안 잠잠했던 산업정책의 새로운 방향제시와 함께 정부의 역할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자유주의나 시장 불개입을 표면적으로 내세워 온 미국정부는 NII계획의 발표를 계기로 적극적인 지원의지를 밝히고 있다. EU의 경우 역내 시장통합과 대외적 공동보조의 추진에 따라 시장개입은 불가피한 실정이다. 일본 또한 전통적인 「유인정책」이 다른 형태로 되살아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미 열거한 중요국가의 의욕적인 구상들이 각 지역 특유의 여건에 바탕을 두고 있기는 하나 공통적으로 시장수요의 변화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다음과 같은 정부·공공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 정보·통신산업 이외에도 적용될 수 있는 신산업정책의 방향을 말해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첫째 규제의 완화및 철폐다. EU의 경우 98년 1월까지 전화서비스및 통신인프라시장을 완전자유화할 예정이다. 미국은 1934년 이래 최초로 2월 통신법을 제정했으며 그 중요한 취지는 실질적으로 지역및 장거리 전화시장, 그리고 케이블TV 시장간 진입장벽을 거의 철폐하는 데 있다.
둘째 범세계화의 확산이다. 미국의 NII및 GII계획이나 95년 2월 제1차 G7 정보·통신각료회의 결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세계는 하나의 정보·통신시장으로 통합되고 있다. 민간기업 차원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발표하고 있는 국제적·전략적 제휴는 미국의 통신법 제정을 고비로 더욱 활기를 띨 것 같다.
셋째 공정경쟁 혹은 경쟁촉진정책의 강화를 들 수 있다. 통신시장의 재편에 따라 예상되는 부작용들(예로 경쟁을 저해하는 독과점이나 시장지배력의 남용, 또는 보편적 서비스에 대한 제한요인등)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틀이 갖추어지고 있다. 미국의 예를 든다면 규제기관인 연방통신위원회(FCC)의 권한과 역할은 더욱 확대된다.
넷째 정부·공공의 대규모 재정지원이 예상된다. 총규모를 파악하기는 곤란 하나 미국의 경우 국가연구교육망 건설을 위하여 정부재정에서 170억달러 투입을 예정하고 있으며 기술개발및 초고속정보망 도입지원을 비롯하여 막대한 예산이 동원될 전망이다. EU는 TEN 구축을 목표로 94∼99년 760억 달러에 이르는 공공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일본의 예를 들면 멀티미디어 광섬유망및 광통신망 기술의 확산을 비롯한 정보화계획을 위하여 2010년까지 거의 1조달러의 소요를 예측하고 있다.
다섯째 사회 각계각층간 협조체제의 확립을 들 수 있다. 정보사회의 발전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통합에 기초해야 한다. 정부는 선도적, 지원적, 조절적 역할을 수행할 따름이다. 이들 선진제국이 정치 행정및 민간을 대표하는 갖가지 복잡한 조직의 추진체계를 갖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끝으로 한국적 현실은 어떠한가. 그간 정보사회가 많이 진전되었고 정부의 주도적 역할 또한 여기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단지 이상 지적한 국제적 추세가 시사하듯이 정보사회를 앞당길 수 있는 노력이 일관성있게 체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특히 사회적 협조체제는 물론 정부부처간 유기적 협력, 경쟁질서의 확립, 그리고 한국적 문화를 바탕으로 한 정보사회의 실현등 중요한 과제를 다시 한 번 강조한다.<김세원 서울대교수·경제학>김세원>
▷약력◁ ▲1939년 제주출생 ▲서울대법대 졸업 ▲벨기에 브뤼셀대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박사 ▲71년∼현재 서울대 경제학부교수 ▲한국국제경제학회장, 통신개발연구원장, 금융통화운영위원 역임 ▲현 한국EU학회장, 세계화추진위 위원, 비교경제학회장 ▲저서 「한국경제의 선택」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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