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차례 부총리 지낸 온건론자/아랍권,강경 내각 전망속 다소 안도이스라엘 차기 외무장관으로 9일 다비드 레비(58)가 지명되자 아랍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벤야민 네탄야후 총리당선자가 초강성 내각을 출범시킬 것이란 우울한 전망 속에 레비의 입각만큼은 「다행」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4년만에 부총리겸 외무장관직에 복귀할 레비는 그만큼 합리적 온건론자로 분명한 자리매김을 해왔다. 외무장관 재임중이던 90∼92년 전리쿠드당 정권내에서 매파 이츠하크 샤미르총리를 견제했던 유일한 「비둘기」였다. 당시 요르단강 서안에 유대인정착촌 건설을 강행하려던 샤미르의 정책을 강력히 비판했고 현중동평화 회담의 모태인 91년 마드리드회의의 성사에 한 몫을 했다.
강성 네탄야후 총리가 온건 레비를 외교 사령탑에 앉힌 이유는 자명하다. 우선 21일 범아랍 정상회담을 긴급소집하는 등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고 있는 아랍권을 어루만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랍권내 강경기류를 방치할 경우의 중동정세 경색에 대한 우려가 레비를 정부내 2인자로 끌어 올린 셈이다.
이와함께 중도 게셔(히브리어로「다리」라는 뜻)당을 이끌고 리쿠드당과 연합, 총선 승리를 이끌어 낸 레비의 공로에 대한 논공행상 성격도 간과할 수 없다. 그는 작년 네탄야후와의 불화로 한때 리쿠드연합에서 탈퇴하고 총리직 도전을 선언하기도 했지만 네탄야후의 삼고초려로 이를 중도포기했었다.
7선의원인 레비는 28년의 의정 경력중 15년을 장관자리에서 보낸 관록의 정치인이다. 부총리를 두차례나 맡았고 이민부(77∼79) 및 주택건설부(79∼90), 외무장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모로코에서 태어난 아프리카계 유대인으로 건설노동자에서 장관직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가 아시아와 아프리카 출신들로 구성된 이른바 「동방 유대인」계층의 지지를 받는 것도 그런 연유이다.
팔레스타인과의 3단계 협상, 시리아와의 골란고원 협상등 지난한 과제를 앞두고 그가 네탄야후와 어떠한 강온 하모니를 이룰 지에 세계의 눈길이 쏠려있다.<이상원 기자>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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