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세계제패 자극 유망주 육성 등 권장/5월 세계아마선수권서 최명선군 “7위”/문영삼·최은아 이어 국제무대 「샛별」로북한 바둑계에 샛별들이 양성되고 있다.
북한의 소년기사 최명선군(14)은 지난달 21일부터 4일간 일본 나가노(장야)현 오오마치(대정)시에서 열린 제18회 세계아마추어 바둑선수권대회에서 5승 3패로 7위에 올랐다. 이로써 최군은 북한 바둑의 대들보 문영삼군(17), 신데렐라 최은아양(11)에 이어 세계 무대에서 기재를 공인받은 기존의 소년·소녀 신예군에 합류하게 됐다.
문영삼군이 92년 세계아마추어바둑선수권대회에 데뷔할 때 15위(4승4패)를 거둔 것(93년 대회에서는 6승2패로 6위)에 비하면 최군의 7위 성적은 북한 바둑계의 잠재력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최군은 이 대회에서 한국대표 이용만 6단(33)에게 5집반 졌다.
조총련기관지 민주조선 최근호도 최군을 크게 소개했다. 민주조선에 따르면 최군은 82년 9월 2일 함흥 출생으로 금성고등중학교에 재학중이며 평양 만경대 학생소년궁전 바둑체육단 소속이다. 91년 아버지로부터 처음 바둑을 배우자마자 기력이 급상승, 함흥시 바둑애호가 들에게 「꼬마기사」라는 애칭을 받았다. 92년부터 1년동안은 중국에 바둑유학을 했다.
북한의 바둑인구는 현재 1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우리의 1천만 바둑 인구에 비하면 비교가 안되지만 이 수치는 90년대 들어 2배로 늘어난 것으로 지속적으로 열기는 확산되고 있다.
북한 당국도 89년 8월 국가체육위원회 산하에 바둑협회를 결성, 평양에 바둑회관을 개관하는 한편 매년「전국바둑대회」를 개최하며 적극적으로 바둑을 권장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이때부터 바둑을 고유의 민속놀이이자 두뇌스포츠로 인정했고 언론매체를 통해 바둑 저변인구 확대에 나섰다. 91년 5월에는 국제바둑연맹에 가입했고 94년부터는 유망주 발굴을 위해 「전국소년바둑대회」를 창설했다.
이같은 북한당국의 정책적인 장려에 힘입어 문영삼, 최은아양 등이 배출됐다. 이창호를 빼닮았다는 문군은 92년 세계아마선수권대회에 북한선수로 처음 등장했고, 최양은 입문 1년만인 92년 세계아마여자바둑선수권대회에서 최연소(7세)로 8위에 입상했다. 최양은 특히 이 대회에서 우리 윤영선아마국수(현재 프로초단)와 최초의 남북 반상대결을 벌여 패했다.
북한이 바둑을 정책적으로 장려하는 까닭은 우리와 중국, 일본간에 바둑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특히 우리 바둑의 세계대회 제패에 자극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속에서 바둑이 민간외교나 외화벌이에 유용하다는 인식이 심어졌다는 것이다.
북한 바둑은 프로기사제도가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아마추어 최강 수준이다. 그래서 유망주들은 대개 중국에 유학하며 우리 바둑이 세계 최고수준에 오름에 따라 한국기원에서 발행하는「월간바둑」도 중요한 교재가 되고 있다.<김병찬 기자>김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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